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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치병 정복 가능할까

중앙일보

입력

영국의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은 최신호에서 향후 20년동안 의학분야의 발전이 지난 2천년 보다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의학의 발전은 21세기 인류의 수명을 얼마나 연장시킬 수 있을까. 세계의 과학자들은 웬만한 사람이 100세를 넘기는 시대가 20년도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심지어 영국의 미래재단은 2010년에 태어나는 사람의 평균수명이 120세에 이를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20세기의 불치병이 머지않아 정복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 20세기는 일단 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감염성질환의 정복사였다고 할 수 있다. 1928년 영국 런던대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개발은 가히 혁명적인 의학발전을 가져왔고 뒤이어 1955년 소아마비 백신 개발 등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려는 인간의 노력은 끊임없이 진행됐다.

이런 노력은 21세기에 커다란 결실을 앞두고 있다. 세계인들은 무엇보다도 불치병 치유를 위해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비밀을 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른바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이 중심이 된 게놈 프로젝트는 30억쌍에 달하는 인체 염기서열의 암호를 풀고 기능을 규명해 유전자속에 감춰진 유전정보를 캐내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 90년 미국 국립보건원과 에너지부 주도로 국제적인 공조속에 시작됐다. 당초 2005년까지 유전자지도를 만들 계획이었으나 민간부문이 뛰어들면서 작년 9월 당초 목표보다 2년 앞당긴 2003년까지 작업을 끝내기로 했다. 유전자지도가 완성되면 각종 생명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놈 프로젝트의 성공은 20세기의 대표적 불치병인 암과 에이즈 정복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암이나 유전질환은 결함이 생긴 유전자가 엉뚱한 `명령´을 내릴 때 생긴다. 따라서 손상된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꿔 주거나 돌연변이를 방지하는 유전자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유도하면 질병을 원인부터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화예방 원리도 간단하다. 노화를 촉진하는 유전자 기능을 정지시켜 ´죽음의 호르몬´이 더이상 생성되지 못하도록 막으면 되는 것이다.

암정복을 위한 인류의 노력은 치열하다. 국제암연구기구(IARC)에 따르면 전세계 암환자는 2천만명을 넘고 있다. 우리나라의 97년도 암등록환자수는 7만8천800명이지만 실제 환자는 이 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암 정복을 위해 현대의학이 내세우는 무기는 외과수술,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면역요법 등으로 다양해졌지만 암치료를 받은 환자들의 5년간 생존률이 50%에도 못미치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암이 발견된 시점에는 암세포가 이미 30여 차례의 세포분열을 통해 10억개의 덩어리로 커져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각광을 받을 암치료법으로는 우선 96년 국내에서도 시도돼 관심을 끌었던 p53유전자요법을 들 수 있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죽이는 p53유전자를 리포즘이란 미세지방으로 포장해 혈관을 통해 주사하는 방법이다. 세계 각국은 암세포 공격유전자를 종양에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매개체를 개발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암연구가들은 ´앞으로 25년이나 30년후면 암은 불치병이 아닌 관절염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화이트헤드 의학연구소에서는 암이 2010년까지 정복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불치병 정복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과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 1천444명의 과학기술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 지난 16일 발표한 ´제2차 과학기술예측´(2000-2025년)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오는 2020년 대부분의 암관련 유전자 기능이 분석되고 암 전이 기전이 해명되는 한편 2010년에는 바이러스성 간염 질환치료제가 실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 조사대상 과학자들은 가장 중요한 미래 과학기술분야로 ´보건ㆍ의료 분야´를 꼽았다.

이밖에 인체염색체의 각 유전자 지도가 작성되는 것은 2016년, 개체의 노화기구가 규명되는 시기는 2020년, 암에 유효한 생물학적 치료법이 보급되는 때는 2015년께로 예상됐다.

국립암센터 개원 준비본부장인 서울대 박재갑(朴在甲ㆍ일반외과)교수는 ´20세기의 대표적 불치병인 암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이뤄졌고 마지막 해결 실마리만 남겨둔 상태라고 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20세기의 페니실린 개발에 못지않는 의학발전사의 쾌거가 될 암치료제 개발이 21세기에 의학이 인류에게 주는 첫 선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인류에게는 21세기 부푼 의학발전의 기대와 함께 만만찮은 도전이 예상되고 있다. 항생제의 오남용으로 항생제에 대한 세균의 내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항생제인 반코마이신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의 등장은 21세기 새로운 질병의 도전을 예고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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