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전 신라갑옷의 부활···'28톤 흙케이크' 퍼올렸다

중앙일보

입력 2020.04.07 13:13

업데이트 2020.04.07 16:02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경주 쪽샘지구 C10호에서 나온 말갑옷과 토기 등 유물 전체 모습. 사진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경주 쪽샘지구 C10호에서 나온 말갑옷과 토기 등 유물 전체 모습. 사진 문화재청.

지난 2009년 신라 고분 최대 밀집지인 경북 경주시 황오동 일대 ‘쪽샘지구’에서 희귀한 유물이 발굴됐다. 일명 ‘C10호 묘’로 불린 고분에서 5세기께 장수가 착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찰갑(札甲·비늘형 갑옷)과 마갑(馬甲·말에 장착한 갑옷) 등 마구류 일체가 나온 것. 삼국시대 장수·말의 갑옷이 온전히 출토된 것은 당시 처음이었고 지금까지도 유일하다.

2009년 발굴된 경주 쪽샘지구 C10호 고분
온전한 마갑 수습 위해 모의실험까지 거쳐
28t 토양 통째로 파내고 740조각 깨알 조사
경주문화재연구소, 10년 연구 보고서 발간

당시 기마문화의 실체를 일러줄 유물 출토에 국내 고고학계와 문화재 전문가들이 들떴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1600년 간 땅속에서 흐트러짐 없이 잠자고 있던 갑옷을 어떻게 원형 그대로 수습할 것인가? 그나마 마갑 위에 놓여 있던 장수 갑옷은 노출돼 있어 한점 한점 수습할 수 있었다(총 3800여 조각). 반면 규모(292.1×90.8cm)도 엄청난 마갑유구는 땅에 폭 박힌 채 마치 화석처럼 존재했다.

 2009년 경주 쪽샘 C10호 목곽묘 발굴조사 중에 발견된 말 갑옷(馬甲, 전투에서 말의 보호를 위해 착용된 갑옷)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채 출토된 첫 사례다. 사진 문화재청

2009년 경주 쪽샘 C10호 목곽묘 발굴조사 중에 발견된 말 갑옷(馬甲, 전투에서 말의 보호를 위해 착용된 갑옷)은 도굴되지 않은 상태의 완전한 형태를 갖춘 채 출토된 첫 사례다. 사진 문화재청

“이런 경우 흙과 유물을 통째로 굳힌 상태에서 떠내는 게 정석이었죠. 그러면 영원히 유물의 한쪽 면, 손으로 치면 ‘손등’만 보게 돼요. 온전한 마갑이 처음인데다 언제 다시 올 기회일지 몰라 꼭 ‘손바닥’까지 보고 싶었어요. 결국 유물이 묻힌 토양 전체를 통째로 들어내는 발굴에 착수합니다.”

당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 학예연구사로서 C10호 현장 수습을 이끌었던 박윤정 발굴제도과장의 회고다. 박 과장은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쪽샘지구 발굴 일선에서 뛰었고 이 가운데 18개월을 유물 수습에 매달렸다. 이 과정에서 국내 발굴 사상 전무후무한 ‘28t 규모의 흙더미 퍼올리기’가 시행됐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기회" 도박 걸었다

피 마르는 듯했던 발굴‧수습을 포함해 지난한 보존처리‧복원까지 쪽샘 마갑 연구 10년 여정을 돌아보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7일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공개했다.

딱딱한 학술용어로 채워진 보고서를 박윤정 과장의 도움말을 통해 복기하면, 당시 마갑 수습 과정은 이랬다.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경주 쪽샘지구 말갑옷 이동 준비 작업. 사진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경주 쪽샘지구 말갑옷 이동 준비 작업. 사진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당시 모의실험 때 크레인으로 유사한 흙더미를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당시 모의실험 때 크레인으로 유사한 흙더미를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일단 표면이 노출된 말 갑옷의 보호를 위해 임시 가건물을 설치했다. 냉난방 등 공조시설도 마련해 일정 온도‧습도가 유지되게 했다. 다음 유물이 묻혀 있는 토양을 연구했다. 흙으로만 돼있어도 퍼내기 쉽지 않은데, 흙더미 사이사이 냇돌(냇바닥에 오랜 시간 있으면서 물살에 다듬어진 돌)이 확인됐다.

“크기가 10~30cm로 사람 머리만했어요. 들어올리다가 이 돌들이 무너져 내리면 유물 전체가 훼손될 게 뻔하잖아요. 충격을 줄이려면 최대한 크고 넓게 파내야 했죠. 그뿐인가요. 실전에서 한치 실수라도 있으면 안되니까 먼저 테스트가 필요했어요.”(박 과장)

모의실험으로 유물 안전 여부 거듭 확인 

결국 발굴팀은 인근 유사한 토양을 대상으로 모의발굴을 벌였다. 사람 키만한 깊이로 파고 들어가서 4.5m×1.4m 너비의 사방에 철판을 둘렀다. 이어서 이 흙더미를 단단히 엉겨붙게 할 강화제를 도포하고 한지를 부착한 뒤 석고붕대를 감싸고 발포우레탄을 약 20㎝ 두께로 충전했다. 이 상태에서 크레인으로 들어올렸다. 마치 거대한 케이크 조각을 땅에서 떠내듯이 한 셈이다.

“이 흙더미를 해체했을 때 유물이 온전할지 여부도 조사했죠. 그랬더니 좀 더 파내는 게 좋겠다는 결론이 났어요. 출토 상태가 좋지 않아 유물에 미세한 금들이 많았는데 약간의 충격도 위험했거든요.”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당시 실제 유구 수습 때 크레인으로 흙더미를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수습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당시 실제 유구 수습 때 크레인으로 흙더미를 들어올리는 모습. 사진 문화재청

2010년 경주 쪽샘 C10호 말 갑옷 수습 작업에 참여할 당시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오른쪽)의 모습. 현재 연구소 발굴제도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0년 경주 쪽샘 C10호 말 갑옷 수습 작업에 참여할 당시 박윤정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오른쪽)의 모습. 현재 연구소 발굴제도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10년 10월 17일. 철제 파이프와 H빔을 고정한 가운데 크레인으로 28t에 이르는 ‘흙케이크’가 떠올려졌다. 땅 위로 올라온 흙더미를 뒤집은 상태에서 1차 해체해 무게를 18t 가량으로 줄였다. 이렇게 줄인 유구를 연구소 보존처리실로 이동했다. 연구원들이 조심스레 흙을 파헤치며 바닥을 향해 갔다. 마침내 고대하던 ‘손바닥’이 드러났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마갑의 뒷면이 처음으로 후세 연구자들에게 포착된 순간이다.

조랑말 크기에 120㎏ 짊어진 신라 군마

“마갑 뒷면 자체의 확보 뿐 아니라 마갑이 놓인 상태를 A부터 Z까지 알 수 있게 됐죠. 예컨대 마갑을 바로 놓았나, 그 밑에 갈대 같은 걸 깔았나 등. 남은 유기질을 통해 갑옷 표면에 붙은 견‧마 등 직물 종류를 파악한 덕에 당시 말 갖춤 일체의 재현이 가능해졌습니다.”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수습된 마갑의 표면 이물질 제거작업 모습. 문화재청

7일 공개된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유적Ⅹ - C10호 목곽묘 출토 마주·마갑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마갑 유구를 이동하기 위해 무게 28t 규모의 흙더미를 통째 퍼올리는 작업이 이뤄졌다. 사진은 수습된 마갑의 표면 이물질 제거작업 모습. 문화재청

경주 쪽샘지구 말갑옷 재현품. 사진 문화재청

경주 쪽샘지구 말갑옷 재현품. 사진 문화재청

이번 보고서 전체 편집을 담당한 정대홍·심명보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당시 수습된 마갑 조각은 740매에 이르렀다. 10년 연구 끝에 최근 재현된 마갑 복제품 무게는 약 36kg에 이른다. 당시 말이 이런 갑옷을 두르고 역시 갑옷을 입은 장수를 태웠단 얘기다. 요즘 조랑말 크기로 추정되는 당시 군마가 총 120~130㎏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학계에서도 이런 마갑이 “의례용이었다” “실제 전투에 쓰였다” 등 의견이 갈린다. 후자를 지지하는 쪽은 고구려 쌍영총 벽화에 이와 똑같은 마갑을 착장한 말과 그에 올라탄 장수의 모습이 그려져있음을 증거로 제시한다.

이종훈 소장은 “말 갑옷 재현품을 일반 관객도 관람할 수 있게 코로나19 사태가 호전되는 대로 상반기 중 전시를 열 것”이라며 “삼국통일을 이루는 데 바탕이 됐을 신라 기마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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