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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쓴 주지훈을 금발 성우가 연기… 더빙으로 뻗는 K드라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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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가 현재 더빙해서 제공하는 콘텐트는 총 1만 시간 이상, 30개여개 언어나 된다. 더빙 성우들이 오리지널 화면을 보며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현재 더빙해서 제공하는 콘텐트는 총 1만 시간 이상, 30개여개 언어나 된다. 더빙 성우들이 오리지널 화면을 보며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모습.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출연자가 김치를 먹으며 말할 때 그게 깍두기냐 배추김치냐에 따라 웅얼대는 소리가 달라지잖아요. 영어로 더빙할 때 성우가 그런 걸 알아야 정확한 연기가 가능해요. 연기력만큼이나 한국문화 이해가 중요하단 얘기죠.”(도로시 남)

넷플릭스 '킹덤2' 13개 언어 더빙판 제공 #'태양의 후예' 등은 국내서 더빙 해외방영 #"한국문화 이해해야 자연스러운 연기 가능"

1990년대 KBS TV를 통해 미국드라마 ‘엑스파일’을 본 시청자라면 주인공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를 더빙 성우 이규화‧서혜정의 목소리로 기억할 것이다. 요즘 넷플릭스로 ‘킹덤’을 보는 외국인 시청자들은 주지훈‧배두나 등 출연진을 더빙 성우의 목소리로 기억할지 모른다. ‘킹덤2’의 경우 29개 언어 자막 외에 영어‧일본어‧스페인어 등 13개는 더빙판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기생충’ 역시 독일‧프랑스 등 여러 국가에서 더빙판으로 개봉돼 자막에 익숙지 않은 서구인들의 감상을 도왔다.

언어별 오디션 통해 더빙 성우 뽑아

한국 영화‧드라마‧예능프로그램 등이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한국어를 외국어로 옮기는 자막‧더빙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대체로 콘텐트를 수입한 국가에서 전문업체가 작업하지만 국내에서 해당 언어 버전을 만들어 내보내기도 한다.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과 함께 일하는 성우 도로시 남(51)은 그런 시장에서 돋보이는 베테랑이다. 재미교포 출신으로서 영어프로 쇼호스트로 출발한 그는 최근 10년 새 수십편의 드라마 영어 더빙을 했다. 기억에 남는 작품으론 2017년 작업한 KBS ‘태양의 후예’(2016)를 꼽았다.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태양의 후예'의 더빙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로시 남(검정 티셔츠를 입고 한쪽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성우들의 연기 디렉션을 하고 있다. 사진 아리랑TV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태양의 후예'의 더빙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도로시 남(검정 티셔츠를 입고 한쪽 손을 들고 있는 사람)이 성우들의 연기 디렉션을 하고 있다. 사진 아리랑TV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사진 아리랑TV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사진 아리랑TV

“송혜교 역할(강모연)은 아니고요(웃음) 엄격한 수간호사 하자애를 포함해 12개 캐릭터를 했어요. 대부분 성우가 작품당 5~6개 캐릭터를 소화하죠. 아리랑TV 성우팀엔 영어‧러시아어‧아랍어‧베트남어‧태국어‧인도네시아어가 있는데 저는 전체를 이끌면서 영어 더빙 때 조연‧엑스트라를 주로 담당해요.”

최근 3년 동안 이들 팀이 더빙한 드라마는 ‘낭만닥터 김사부’(아랍어‧러시아어) 등 20여개에 이른다. 모두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한류 증대를 목적으로 해외배급 지원사업으로 추진한 것들이다. 진흥원 측은 “한국 콘텐트가 잘 알려지지 않은 구소련 연방국가, 영어권 아프리카 지역, 중동(MENA) 지역 TV(지상파, 케이블, 위성 포함)에 자막 및 더빙 버전을 무상으로 배급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아제르바잔 등에서 러시아어로 방영된 ‘쇼핑왕 루이’는 “한국의 경제발전과 흥미로운 전통을 느낄 수 있었다”는 반응이 쏟아졌다고 한다.

연기력만큼이나 한국 문화 이해 중요  

자막‧더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대본 번역이다. “예컨대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가 송혜교에게 ‘혈액형이 뭡니까?’ 질문하는데, 이게 미국 맥락에선 이상해 보이거든요. 응급상황이나 아픈 환자인 것처럼 오해돼요. 그래서 미국식으로 ‘별자리가 뭐예요?’ 하고 바꾸는 거죠.”(도로시 남) 자막과 달리 더빙은 배우들의 입 모양에 맞춰 연기해야 하기 때문에 녹음 현장에서 더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기도 한단다.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사진 아리랑TV

아리랑TV 미디어 콘텐트제작팀에서 한국 드라마 등 K콘텐트를 자국어로 더빙하는 성우들. 사진 아리랑TV

아리랑TV 더빙 성우들은 대체로 해당 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국가 출신 가운데 오디션으로 뽑혔다. 한국 거주 외국인이 늘고 K팝‧드라마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경쟁률이 높아지는 추세라고 한다. 일부는 연기나 음악 전공자도 있다. ‘태양의 후예’에서 송중기 역(유시진)을 맡았던 헌터 콜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K팝그룹 'EXP에디션'의 멤버다.

김형우 콘텐트제작팀장(PD)은 “가장 중요한 건 현지 시청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들려야 하는 거라 실제 배우와의 목소리 싱크로율보단 연기력 자체를 우선시한다”고 말했다. 도로시 남은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시점’의 이영자를 더빙할 땐 그의 쾌할한 성격이 잘 전달되게 연기하는 식”이라고 했다. 김 PD는 “한류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부 지역에선 아마추어들이 불법 더빙한 버전이 도는데 양질의 더빙‧자막 버전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미 배우조합과 계약 더빙 활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람들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글로벌 유통을 겨냥한 자막‧더빙 시장은 더 커질 전망이다. 특히 발빠른 곳이 넷플릭스다. 넷플릭스가 현재 더빙해서 제공하는 콘텐트는 총 1만 시간 이상, 30여개 언어나 된다. ‘킹덤’의 인기가 보여주듯 비영어 콘텐트가 영미 시장에서 소화되는 비중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해 영어 더빙 크리에이티브 매니저라는 직제를 신설하고 미국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와 3년 계약을 맺어 향후 외국어 영화 및 시리즈의 영어 더빙을 확대할 발판을 마련했다.

일각에선 더빙이 자막에 비해 오리지널 콘텐트를 훼손한다고 지적하지만 잘 된 더빙이 작품 이해를 높인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특히 미국의 경우 넷플릭스 시청자들이 자막이 아닌 더빙 버전을 선택하는 비율이 70~80%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다만 더빙 제작이 자막에 비해 10배 가량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적게 제공된다. 김 PD는 “더빙이냐 자막이냐는 ‘규모의 경제’ 문제”라면서 “한국 콘텐트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을수록 더빙에 투자하는 업체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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