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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억 적자, 탈원전 무관” 정부·한수원 논리개발 회의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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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탈(脫)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국수력원자력에 큰 손실이 났다는 비판을 막기 위해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8년 8월 한수원이 설립 이후 최악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정부와 한수원은 경영공시 한 달 전 이를 예측하고 여론 악화를 의식해 '대응논리 개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산업통상자원부·한수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6134억원 손실 한 달 전 회의 열고 "대응논리 개발"

2018년 7월 중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회의 내용을 요약한 메시지 내용. 허정원 기자.

2018년 7월 중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회의 내용을 요약한 메시지 내용. 허정원 기자.

6일 중앙일보가 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정부와 한수원은 지난 2018년 7월 13일 회의를 하고 한수원이 2분기 수천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데 따른 '회계처리 영향 대응 협의'를 열었다. 당시 한수원은 43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고도, 한수원 설림 이후 최대 규모인 613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이 회의에는 당시 산업부 원전산업국장, 원전산업과장과 한수원 재무처장, 기술전략처장 등이 참석했다.

문건에 따르면 정부와 한수원은 "8월 14일 한수원 회계처리 경영공시 후 국회·언론 등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한수원 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며 “특히 총 7200억원의 손실 중 월성1호기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 5600억원 건이 가장 민감하다”고 언급했다. 또 회의 한 달 전인 6월 한수원 이사회가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 등 신규 원전 4기 건설 중단을 의결한 데 대해서는 “신규 원전 취소에 따른 영향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며 “한수원의 적자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월성 1호기 손실분을 '정산계수'를 통해 보전받는 방안을 산업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언급했다. 정산계수란 전력을 매입하는 한전과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 자회사 간 이익을 조정하기 위한 장치다.

한수원 당기순이익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한수원 당기순이익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에 대해 산업부는 “손실 5600억원은 당초 월성 1호기의 설계수명 시한인 2022년까지 회계장부에 매년 나뉘어 올리는 감가삼각비(설비가 노후함에 따라 소모되는 가치나 비용)를 합친 것”이라며 “회계 기준상 시점이 달라진 것일 뿐 조기 폐쇄로 추가 비용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해당 회의도 국회·언론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전달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감사원장 고발…"결과 발표 의도적 지연"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한수원의 원전 관련 결정이 여러 측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입장이다. 원자력정책연대·원자력국민연대·사실과과학 시민네트워크 등 6개 시민단체와 한수원 노조는 6일 최재형 감사원장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지난해 9월 국회가 월성1호기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지만, 결과 발표를 의도적으로 지연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원자력정책연대, 원자력국민연대 등 6개 시민단체 대표가 최재형 감사원장 고발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6일 서울 종로구 감사원 앞에서 원자력정책연대, 원자력국민연대 등 6개 시민단체 대표가 최재형 감사원장 고발 관련 성명 발표를 하고 있다. 허정원 기자.

한수원은 2018년 3월 월성 1호기 운영에 따른 이익이 3707억원에 이른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갖고 있었지만, 4월 정재훈 한수원 사장이 취임한 직후인 5월 이 수치가 1778억원으로 한 차례 낮춰졌고 최종적으로는 224억원으로 결론이 나 논란이 일었다.

한수원 노조위원장 출신인 강창호 에너지흥사단 대표는 “정 사장 취임 후 한수원은 두 달 만에 경제성 평가를 완료했다”며 “1000명에 가까운 전문 인력을 보유한 감사원이 6달 넘게 조사중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법 127조의 2에 따르면 감사원은 감사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감사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 이 기간을 지키지 못할 경우 감사 기간을 2개월 연장할 수 있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 한 차례 감사 기간을 연장한 데 이어 최종 기한인 올해 2월 말까지도 감사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당시 최 원장은 피감 기관의 협조 문제와 감사의 복잡성 등을 거론하며 "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송구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이미 1월 말 회계에 사용된 컴퓨터를 입수해 포렌식(저장장치 분석) 등 실지감사를 마쳤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란 경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논란 경과.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9일 감사위원회에 부의…“총선 의식한 결론은 곤란”

감사원은 오는 9일 감사위원회에 감사 결과를 부의한다. 강 대표는 “감사원이 이미 조사를 끝 낸 정 사장을 감사위 개최 하루 전에 소환하기로 한 것은 말을 맞추려는 의도”라며 “감사위가 수일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국 총선 결과를 봐 가며 결론을 바꾸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감사위가 끝나는 대로 최대한 빨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지만 시점을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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