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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공유 빼앗긴 봄···"나이 육십에 유일한 수입 끊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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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7년 5개월간 숙박공유업을 하면서 연평도 포격, 북한 미사일, 메르스, 사드(THAAD), 대통령 탄핵까지 다 겪어봤지만, 이번처럼 힘든 적은 없었다."

지인들과 서울에서 에어비앤비 숙소 4곳을 운영하는 배국진(36)씨는 앞으로 몇 달이나 더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1월까지만 해도 월 매출은 2500만원이었다. 직전 6개월 평균 매출은 약 2000만원.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본격 확산한 지난 2월 매출은 4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파격 할인을 내세운 3월에는 매출 400만원을 유지했지만, 1년 중 가장 성수기인 '벚꽃 시즌' 4월에도 현재 예약 상황으론 매출 350만원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5월 예약은 '0건'이다.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래 예약 0건은 처음"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에어비앤비 [로이터=연합뉴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에어비앤비 [로이터=연합뉴스]

빼앗긴 봄…숙박공유의 눈물

에어비앤비 산하 데이터 분석기업 에어디앤에이(AirDNA)에 따르면 3월 첫째주 서울 지역 예약은 1만 2000여건으로 1월 둘째주(2만 2396건)에 비해 46% 감소했다. 해외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어진 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내국인의 도시 여행도 크게 줄면서 도심 지역 호스트들의 상황이 열악해졌다. 에어비앤비코리아 관계자는 "정부의 숙박산업 지원책은 대형 호텔업에 집중돼있고, 외국인만 도시 민박에 묵을 수 있다보니 국내 상황이 나아져도 호스트들이 회복하기가 쉽지 않은 '이중고' 상황"이라고 말했다.

배국진씨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일부의 올해 1~5월 수익. 1000만원 가까이 되던 1월 매출이 2, 4, 5월에 0원을 기록했다. 3월에는 장기 투숙객 1명(200만원)이 유일했다. [사진 배국진씨]

배국진씨가 운영하는 에어비앤비 일부의 올해 1~5월 수익. 1000만원 가까이 되던 1월 매출이 2, 4, 5월에 0원을 기록했다. 3월에는 장기 투숙객 1명(200만원)이 유일했다. [사진 배국진씨]

"월 수입 0원, 어떻게 견디나"

다른 호스트들도 "이런 경우는 평생 처음"이란 말을 반복했다. 에어비앤비 한국 지사가 생기기 전인 2011년부터(에어비앤비는 창업 당시부터 세계 어디서나 이용 가능) 서울 광진구에서 에어비앤비를 운영해온 주부 김귀녀(64)씨는 3월 수입이 0원이 됐다. 이전까지는 월 100만~150만원은 벌었다. 그는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볼 수도 없는 나이라, 당장 생활비가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2009년 딸이 결혼한 후 딸이 쓰던 방을 유럽·미국·일본의 K팝 팬들에게 내주며 월 생활비를 벌었다. 남편은 시골에서 농사일을 한다. 최근 코로나19로 수입이 끊긴 김씨는 이제 딸에게 생계를 의존해야할 상황이다. 김씨는 "2015년 메르스 때는 두세 달 힘들다 회복됐는데, 지금은 신규 예약은커녕 관광객이 한동안 없을 것 같아 어떻게 견딜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지원도 결국 대출이라 겁이 나고, 저소득층 지원금을 기다리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대기업 은퇴 후 서울 종로구에서 에어비앤비를 전업으로 하는 60대 김모씨도 "평생 일했지만 나이 육십에 처음으로 수입이 끊겼다"고 호소했다. 자녀를 다 키우고 은행 대출을 받아 지은 집에서 시작한 숙박공유는 김씨 부부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4월까지 모든 예약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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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인 숙박규제 풀어달라"

위홈은 서울시 등의 지원을 받아 숙박공유업이 국내 관광객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출시를 4월로 당겼다. [사진 위홈]

위홈은 서울시 등의 지원을 받아 숙박공유업이 국내 관광객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서비스 출시를 4월로 당겼다. [사진 위홈]

지난해 11월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토종 숙박공유업체 '위홈'도 위기를 맞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진행 중이던 투자가 보류된 것. 위홈은 실증특례 지정에 따라 서울 호스트 4000명, 연 180일에 한해 내국인에게도 숙박공유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내국인 대상 서비스를 출시하기 위해 정부 특례조건 심사를 받고 있다.

조산구 위홈 대표는 "투자도 채용도 다 막혔지만, 하루 빨리 서비스를 출시해 호스트들을 돕자는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대표는 "서울 이외 지역에서도 도시민박업자들에 대한 내국인 숙박 특례가 절실히 필요하다"며 "정부는 특례지역 확대를 검토해달라"고 주장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 중인 김모(56)씨는 "신용보증재단 소상공인 대출신청을 해놨지만 접수 후 아직 연락이 없다"며 "코로나19 영향으로 이제는 정말 내국인을 받지 않고는 숙박업을 할 수 없게 됐다"며 한숨을 쉬었다.

배국진씨 역시 "일시적으로 내국인 규제를 풀어 5~10% 매출이라도 올릴 수 있게 숨통을 틔워달라"며 "합법적으로 외국인만 받으면서 사업한 민박업 소상공인들은 대출 신청에서도 병목현상으로 순번이 밀려 진퇴양난인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에어비앤비 "계획이 다 있었는데"

물론 한국 숙박공유 시장만의 위기는 아니다. 에어비앤비의 3월 둘째 주 예약은 전 세계에서 모두 줄었다. 아시아에선 전년 대비 95%가, 유럽에선 75%, 미국에선 50%가 떨어졌다.

실리콘밸리의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기업)' 에어비앤비의 상장 계획도 순연이 불가피해졌다. 2008년 창업한 에어비앤비는 올해 상반기 나스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최근 에어비앤비 내부의 기업가치 평가는 2017년 받았던 310억 달러에 한참 못 미치게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마케팅비 지출로 지난해 1~9월 순손실이 3억2200만 달러(약4000억원)를 기록한 데 이어,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악재가 겹쳤다.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가 30일(현지시간) 호스트들에게 보낸 편지 [사진 에어비앤비]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가 30일(현지시간) 호스트들에게 보낸 편지 [사진 에어비앤비]

에어비앤비는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올해 예정돼있던 모든 마케팅을 취소하겠다고 27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창업자들은 무보수로, 임원들은 '반값 월급'으로 일하겠다고도 했다.

그렇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지난 14일(현지시간) 에어비앤비는 "이날까지 진행한 예약 중 3월 14일~4월 14일 체크인 일정 건에 대해 예약 취소 수수료를 물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집을 빌려주는 호스트가 선택한 환불 정책에 상관없이 '무조건 무료 취소'를 해주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세계 에어비앤비 호스트들은 "호스트가 손해를 떠안는 구조"라며 반발했다. 이후 브라이언 체스키 에어비앤비 CEO는 30일(현지시간) "약 30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5월 31일까지의 예약 취소에 대해 환불금 25%를 사측이 부담하겠다"고 발표했다.

팩트로 FLEX, 팩플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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