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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큰 회사, 동네 치킨집 구분없는 배달 오토바이의 ‘무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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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강갑생 기자 중앙일보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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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배달 오토바이도 급증했다. 이들 배달 오토바이의 법규위반으로 오토바이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배달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배달 오토바이도 급증했다. 이들 배달 오토바이의 법규위반으로 오토바이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중앙포토]

“예전엔 아이들에게 횡단보도 건널 때 차 조심하라고 했는데, 요즘은 오토바이 잘 확인하라는 말을 더 많이 합니다.”

다른 사고 감소, 오토바이만 증가 #배달 오토바이 법규 위반이 원인 #경찰, 오토바이 무법 단속에 소홀 #업계·경찰, 시민 보호방안 필요

최근 지인이 전해준 얘기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가 켜진 뒤 자동차가 다 정지한 걸 확인하고 건너도 어느샌가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오토바이 때문에 놀란 적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심지어 여러 사람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도 그사이를 곡예운전 하듯이 비집고 나가는 오토바이도 있다”며 혀를 찼다.

이러한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특히 배달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는 지역에서는 쉽사리 목격할 수 있는 장면들이다. 오토바이 뒤 상자에 각종 상표나 로고를 달고 다니는 배달 오토바이의 ‘무법’은 배달앱과 배달대행 시장의 급성장 못지않게 늘고 있다.

정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배달 시장 규모는 약 20~23조원에 달한다. 2014년 10조원에서 5년 새 2배 넘게 성장했다. 이중 배달대행 시장의 팽창속도는 더 빨라서 2014년 1조원이던 것이 지금은 7조원까지 불어났다. 배달앱 이용자도 지난해 기준으로 2500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배달의 민족’ ‘요기요’ ‘부릉’ ‘생각대로’ ‘바로고’ 등 조금만 둘러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대규모 배달앱·대행 업체도 많아졌다.

이처럼 배달 시장이 커지면서 이에 동원되는 오토바이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배달앱 확산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선 국내 전체 배달원 종사자 규모를 13만명으로 추산했다. 이 가운데 중식당이나 치킨·피자가게 등에서 직접 고용한 배달원이 36%이고, 나머지 64%는 배달 대행업체에서 일하는 배달원이라고 한다. 배달앱이나 배달대행업체 소속이 8만명이 넘는다는 얘기인 셈이다.

교통사고 현황

교통사고 현황

배달앱·대행업체에 고용된 오토바이 배달원(라이더)들은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로 분류된다. 업체로부터 배달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다. 조금이라도 수입을 더 올리려면 한 건이라도 더 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도로 위에서 과속, 신호위반 등 각종 불법을 저지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 배달 오토바이의 증가가 실제로 교통사고에 미치는 영향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지난해 분석·발표한 ‘오토바이 교통사고 현황’을 보면 최근 5년간(2014~2018년) 국내 오토바이 사고는 연평균 6.3%, 사망자 수는 1.1%가 증가했다. 특히 2018년에는 최근 10여년 사이 가장 많은 1만 5000여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자도 410명이나 됐다. 하루에 한명 이상씩 오토바이 사고로 숨졌다는 의미다. 공단의 조성진 책임연구원은 “다른 교통사고는 대체로 줄고 있는데 오토바이 사고만 계속 증가세”라며 “배달앱과 배달대행 서비스의 증가가 주요 요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런 배달 오토바이의 무법행위가 1만명을 훌쩍 넘는 라이더를 보유한 대형 업체나 동네 소규모 점포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흔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배달앱과 배달대행업체의 로고를 달고 복장을 갖췄다고 해서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것도 아니다. 중앙선 침범과 신호 위반, 인도 주행 등 법규 위반은 대동소이하다.

물론 대형업체들은 나름대로 안전교육을 한다고 말한다. 배달앱과 배달대행을 함께 하는 한 업체의 라이더 교육자료를 확인했더니 ‘복장단정’ ‘신호준수’ ‘급차선 변경금지’ 같은 내용이 분명 담겨 있었다. 그러나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이 업체의 고위 간부는 “교육은 나름대로 하는데 현실적으로 라이더들의 교통법규 준수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경찰도 이 문제에선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나름대로 특별단속기간까지 정해서 오토바이의 불법행위를 단속하고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평소 느슨한 단속 역시 사실이다. 오토바이가 인도를 달려도, 주행이 금지된 도로에 나타나도 경찰은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곤 한다. 경찰의 단속이 왜 이렇게 허술할까. 그 이유를 경찰 고위 간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단속해서 범칙금을 물리려고 하면 ‘하루 일당 다 날아간다’고 읍소를 하다 보니 선뜻 단속에 나서기 주저하는 상황도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쉽게 말하면 생계형 불법이라 인정상 엄하게 단속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배달앱·대행업체의 사정도, 경찰의 상황도 아예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협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거나 사업을 확장할 권리는 없다. 배달앱·대행업체는 자신들을 첨단 IT(정보통신)업체라고 자부하겠지만, 배달이 실제로 이뤄지는 곳은 오프라인이다. 이곳이 엉망이라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를 해소할 방안 마련의 일차적 책임은 분명히 해당 업체들에 있다. 경찰 역시 인정에 끌려서, 사고 위험성 등을 우려해 단속에 소극적인 건 시민 보호라는 의무를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다 엄격한 단속과 계도가 요구되는 이유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더 첨언하자면 고객도 “배달은 무조건 빨리빨리”라는 생각을 조금 바꿔야 한다. 그 ‘빨리빨리’로 인한 무법 오토바이를 길에서 마주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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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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