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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조 대책? 그게 또 빚폭탄 될라···매출 0원 자영업자의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금융 대책은 남의 일" 

20일 오후 2시쯤 서울 역삼동의 도곡시장. 반찬을 파는 시장 상인에게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고 하자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터진 이후 몇 주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그래도 평소에 비하면 여전히 반의 반도 안 온다. 사람들이 접촉을 싫어해 물건을 사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일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 오가는 사람들이 조금 보이지만 코로나19 전에 비하면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곽재민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 오가는 사람들이 조금 보이지만 코로나19 전에 비하면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곽재민 기자

대를 이어 40년 동안 도곡시장에서 기름집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홍근(41) 씨는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최근 매출은 30% 정도”라면서 “정부에서 소상공인이나 시장 상인 지원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아직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며 “그냥 하루하루 코로나 이전 상태로만 돌아가길 기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치 가게를 운영하는 강은경 씨도 “사람이 안 오니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김치도 3분의 1만 만든다. 그마저도 안 팔리는 날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시장 상인들은 19일 정부가 발표한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 조치가 “남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상인은 “은행 가서 신청하려면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데 금융 대책이 나오면 뭐하나, 그냥 열심히 나와 하루 벌이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가게 문 닫고 신청 어찌하나" 

정부가 50조원 규모의 비상금융 조치를 19일 발표했지만 당장 죽겠다는 현장의 아우성은 더 커지고 있다. 경제 현장에선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데로 속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한 달을 더 버티기 힘든 한계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 찾아오는 소비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상인들만 보인다. 곽재민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 찾아오는 소비자가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상인들만 보인다. 곽재민 기자

백화점에 주로 납품하는 남성복 제조업체 A 대표는 코로나로 백화점 고객이 줄면서 2월 매출만 해도 전년 같은 기간 대비 4분의 1 토막 났다. 이번 금융대책도 그에겐 그림의 떡이다. 2016 회생 신청 후 회생 절차를 마무리하지 못한 탓에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 대표는 “이대로 가다간 곧 휴업을 넘어 폐업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원 7명의 중소여행사인 동우인투플랜 김유리 이사는 “3월부터 매출이 0”이라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했는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정확히 얼마가 나올지도 아직 모른다"고 말했다.

신청한 고용유지지원금 아직 안 나와  

2월 이후 신규 수주가 0이라는 공연·이벤트 장비 사업자 방 모 씨도 "코로나보다 빚이 늘어나는 게 더 겁난다"며 "정부가 마련한 소상공인 정책자금 대출은 신청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의 썰렁한 모습. 곽재민 기자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도곡시장의 썰렁한 모습. 곽재민 기자

미국과 유럽 상황이 급속도로 나빠지면서 위기는 내수 업종에서 수출 제조업으로도 번지는 분위기다. 현대차 체코 공장과 기아차 슬로바키아 공장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2주간 생산 중단에 들어간다. 이에 앞서 현대차의 미국 앨라배마 공장도 18일(현지시각) 확진자가 나와 멈춰섰다. 자동차 2~3차 부품 업체의 경우 현재도 60~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가동률이 미국과 유럽 시장 위축으로 더 떨어질까 떨고 있다.

백화점 매출액

백화점 매출액

익명을 요구한 차 부품업체 사장은 “우리 같은 중소기업들은 공장이 며칠만 안 돌아도 자금 압박이 온다”며 “정부가 회사채 발행 지원 프로그램(P-CBO)을 가동한다고 들었는데 5월에나 된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 52시간 한시 완화를" 

차 부품업체들은 이런 특수 상황에선 주 52시간 한시 완화 같은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동차산업협회는 “수요 절벽 땐 아예 공장을 닫더라도, 위기 이후 수요 폭증 때 주당 근로시간을 폭발적으로 늘려야 겨우 손해를 벌충할 수 있다”며 “이런 행위가 불법이 되지 않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미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금융 대책뿐 아니라 이번 조치에서 빠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해제 같은 규제 완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타격에 매출이 급속히 줄어든 대형마트들은 그나마 배송이나 배달로 매출을 만회하고 싶지만, 의무휴업일 때문에 제때 배송도 못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1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한산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은 “대규모 시설투자 자금을 차입한 많은 중견기업의 경우, 코로나19 위기 훨씬 전부터 기존 대출은 물론 이자 유예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시달려왔다”며 “이들이 코로나19로 결정타를 맞아 문을 닫게 되면 직원과 이들과 거래하는 수많은 협력 중기도 타격을 입게 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금융 프로그램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획일적이고 단순한 ‘규모’ 기준 지원을 벗어나, 현장을 구체적으로 살펴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등 취약계층 지원 빨리 마련해야"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일자리를 잃거나 당장 수입이 끊긴 비정규직이나 프리랜서 등 취약 계층 지원 방안도 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박성우·곽재민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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