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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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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코오롱베니트 정보보안팀의 김승렬 팀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잘 때도 스마트폰을 머리맡에 두거나 손에 쥐고 잔다. 그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는 건 폰에 설정해 놓은 알람 때문. 코오롱그룹 내 IT 서비스망에 이상이 오면 즉시 그에게 알람이 온다.

방역회사 하루종일 출장소독 중 #경조사 챙기는것도 사치일 정도 #온라인주문 몰려 일손 부족한 배송 #알바생 하루 평균 1000명 더 필요

최근 그의 주요 업무는 그룹 ‘가상 사설망(VPN)’을 확대하고 이를 유지하는 일. VPN은 인터넷 트래픽을 암호화하고 온라인상의 신호를 보호하는 툴이다. VPN이 없으면 사실상 재택근무는 불가능해진다.

동시접속자 1000명 → 3000명으로

코오롱 VPN 담당 재택근무 늘어 유저관리 업무 3배로

코오롱 VPN 담당 재택근무 늘어 유저관리 업무 3배로

코오롱그룹은 최근 그룹 전반에 걸친 재택근무를 실시 중이다. 이에 대응해 기존 1000명의 유저가 동시에 접속해 사용할 수 있던 VPN 용량도 최근 3000명 유저 수준으로 확장했다. 사실상 그룹 내 사무직 직원 대부분이 재택근무에 들어간 데 따른 조치다. 그 바람에 김 팀장과 그의 팀원 입장에선 업무량이 기존보다 3배 이상 늘었다. 매일 비상대기 상태를 유지 중인 김 팀장은 15일 “팀원들끼리 ‘정보보안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팀으로 바뀌었다’는 농담을 주고받곤 한다”며 “VPN에 문제가 생기면 그룹 전체의 업무가 멈출 수 있는 만큼 매일 전쟁터에 가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많은 직장인은 재택근무에 돌입한 가운데, 여전히 현장을 지키는 이들도 있다. 재택근무를 지원하거나 ‘대한민국 산업’이 멈추지 않고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다.

방역·방제기업인 세스코 직원들은 요즘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만큼 바쁘다. 이 회사 100여 개 직영 지사와 3000여 명의 현장 직원들은 온종일 방역복을 입고 작업을 하다 보니 걸려오는 전화를 제때 받지 못하기 일쑤다.

경조사를 챙기는 일은 이미 사치가 됐다. 방역에 필요한 각종 소독액이 부족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게 일상이 됐다. 세스코 관계자는 “산업 현장은 물론 각종 정부 기관에서도 방역 의뢰가 쏟아져 정말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며 “가용한 모든 인력이 현장에 투입돼 있어, 현업 직원들과는 일과 시간 중 통화도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수도승 같은 ‘면벽 식사와 근무’는 기본

매출이나 출하량이 줄었어도 공장을 세울 수 없는 곳이 있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정유·화학업체들이다. SK이노베이션의 울산 콤플렉스(이하 울산CLX)에서 근무하는 1600여 명의 오퍼레이터(운전원)들은 4조 3교대로 하루 24시간 공장을 지킨다. 울산CLX의 경우 경기 위축으로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출하량이 15%가량 줄었다. 하지만 830만㎡(약 251만 평) 규모의 울산CLX는 국가 기간시설로 분류된 ‘국가보안목표 가급 시설’이다. 한 번 멈추면 재가동하는 데 최소 1~2주 이상이 걸리고, 가동 중단에 따른 생산 차질로 수백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그래서 오퍼레이터를 포함한 사실상 전 직원은 정상 근무를 한다. 대신 불문율이 있다. 가급적 철저히 ‘홀로’ 일하는 것이다. 수도승 같은 면벽(面壁·벽을 봄) 식사와 근무는 기본이다. 출근해도 직원들은 가능한한 서로를 멀리하는 걸 원칙으로 했다. 감염자가 발생해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구내식당에는 일일이 칸막이를 쳤다. 직원들은 자연스레 벽을 보며 홀로 식사를 해야 한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울 때도 잡담을 나누는 일도 없어졌다. 일과 이후에도 직원 상호 간 모임 등은 원칙적으로 금지다.

회포장 대기 줄 … 화장실 갈 시간도 없어

이마트 횟감 담당 방콕족 몰려 주말엔 하루 500팩 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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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 확산과 언택트(Untact·비접촉) 소비 등으로 더 바빠진 이들도 있다. 이마트 서울 성수점 수산코너에서 참치회를 떠주는 업무를 하는 김상훈(33) 실장은 출근하면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마트 성수점의 평소 참치회 하루 판매량은 평일 20팩, 주말 50팩 수준이었지만, 이달 5~11일엔 평일 150여 팩, 주말 500여 팩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코로나19에 집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혼술을 하는 소비자가 늘어나서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할 때까지 쉬지 않고 회를 썬다.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정도다. 참치회를 사려는 이들이 수산코너 앞에 길게 줄을 서는 모습에 동료들 사이에선 ‘수산 코너에서도 마스크를 파는 거냐’는 농담도 나온다고 했다.

쿠팡 교육 담당 배송 초보자에 업무설명 하루 30번 반복

쿠팡 교육 담당 배송 초보자에 업무설명 하루 30번 반복

쿠팡 서울 송파 3 캠프에서 일하는 송민수(29) 리더도 새로 일을 시작한 쿠팡맨과 배송 아르바이트 쿠팡 플렉스 직원들을 교육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최근 쿠팡의 주문량은 하루 평균 300만 건으로 평소보다 30%가량 증가했다. 쿠팡 플렉스 지원자 역시 큰 폭으로 늘었다. 생업이 힘들어지자, 그나마 일거리가 있는 쿠팡 플렉스에 지원한 이가 늘어난 까닭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하루 평균 4000여 명의 쿠팡 플렉스가 배송에 참여했다면 최근에는 5000여 명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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