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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위성정당 위험" 먼저 경고한 건 통합당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비례 연합정당 참여 또는 비례 위성정당 창당은 지난해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예견됐던 일이다. 당시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은 이 같은 내용의 검토보고서와 공개 우려에도 대안 마련에 소극적이었다. 당시 정개특위 회의록을 살펴본 결과다.

비례 위성정당의 위험성을 경고한 쪽은 오히려 미래통합당의 전신 자유한국당이었다. 그런데 한국당은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27일 본회의를 통과하자 가장 먼저 위성정당(미래한국당) 창당에 나섰다. “위성정당은 위장정당”이라고 비판하던 민주당은 12일 정치개혁연합(가칭)이 창당을 추진 중인 ‘비례 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묻는 권리당원 투표를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례 연합정당 참여 관련 의견 수렴을 위한 권리당원 투표 화면을 취재진에 보여주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례 연합정당 참여 관련 의견 수렴을 위한 권리당원 투표 화면을 취재진에 보여주고 있다. [뉴스1]

선거법이 통과되기 전 집요하게 위성정당 출현 가능성을 파고든 건 정유섭 통합당 의원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정의당 소속 정개특위 위원들은 이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다. 정 의원은 그 당시엔 ‘예언’에 가까운 말도 했다.

“예를 들어서 한국당이 자기 우당(友黨)을 만들어요. 비례 한국당을 만듭니다. 핵심 인사들을 거기로 보내서 중앙당 창당을 해요. 거기는 비례를 쫙 공천해요. 한국당 비례 공천 안 합니다. 지역구만 해요. (…) 한 당은 비례 당으로 두고, 한 당은 비례 당을 안 만들면 선거 결과가 이상하게 뒤집혀요, 선거 끝나고 나면…”(지난해 8월 22일 정개특위 1소위)

이에 김성식 무소속(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안을 제시했지만, 거대 양당의 기싸움에 밀려 허공에 흩어졌다.

지난해 8월 23일 오후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위 정치개혁 제1소위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소속 장제원 간사(왼쪽 두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유섭 의원, 장 간사,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종민 소위원장 등. [연합뉴스]

지난해 8월 23일 오후 열린 국회 정치개혁특위 정치개혁 제1소위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의 전신) 소속 장제원 간사(왼쪽 두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유섭 의원, 장 간사,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종민 소위원장 등. [연합뉴스]

“담합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그것이 정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 과정에서 한국당이 그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되 담합을 원천적으로 못 하도록 하는 조항을 넣자고 하시면 돼요.”

정 의원은 23일 같은 주장을 이어갔지만 진지하게 검토하려는 이는 없었다.

▶정유섭=“A당이라는 당에서 탈당을 해요. (…) 그러고 비례 후보로 나와. 준연동형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하기 때문에 극단적인 경우를 다 상정해보자는 거예요.”
▶이철희(민주당)=“그 제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지금도 가능해요.”
▶정유섭=“준연동형 비례대표 선거제도가 아니면 그런 당을 안 만들지요. (…) 실익이 없으니까.”
▶이철희=“그것은 모르지요.”
▶정유섭=“‘비례 민주당’이 30%를 얻으면 90석(전체 300석의 30%) 중의 절반인 45석을 (준연동형으로) 줘야 돼요. 그러면 한 당이 그렇게 하는데 다른 당은 안 하겠어요?”
▶심상정(정의당)=“아니, 누가 30%를 줘요?”
▶정유섭=“아니, 그러니까 극단적인 경우를 제가 얘기하잖아요. (…) 친문연대가 많이 나올 걸? 비례 친문연대.”
▶이철희=“옛날에 친박연대하고 합친 게 그런 거야.”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의결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오른쪽), 자유한국당 장제원(왼쪽) 등 여야 간사들이 홍영표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29일 오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공직선거법 개정안 의결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종민(오른쪽), 자유한국당 장제원(왼쪽) 등 여야 간사들이 홍영표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의원의 주장은 “선거법상 특정 정당은 다른 정당을 지지할 수 없다”는 논리에 막혀 더는 논의되지 않았다. 이후 민주당은 ‘디데이(D-Day)’로 정한 작년 8월 29일 정개특위에서 선거법 개정안 의결을 밀어붙였다.

당시 정개특위 관계자는 “민주당 안에서는 어차피 한국당과 최종 합의를 하는 과정에서 (선거법 개정안이) 대폭 조정될 것으로 믿었고, 이대로 될 것도 아닌데 이러쿵저러쿵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검찰 관련 법안 등) 중점법안 통과를 위해 반(反)한국당 지형이 필요했고, 선거법을 ‘미끼’로 사용했을 뿐”이라며 “선거법 개정안을 무력화하는 편법을 제대로 따져보지 못할 만큼 법안 심사 과정이 졸속에 졸속을 거듭했다”고 덧붙였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전문위원 검토의견서에는 정당 간 담합을 우려하는 대목이 있다. [자료 국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의 국회 전문위원 검토의견서에는 정당 간 담합을 우려하는 대목이 있다. [자료 국회]

위성정당 우려가 나온 건 이보다 앞선 작년 6월 27일이다. 정 의원은 ‘정당 간 담합과 유권자의 전략적 투표에 의해 불(不)비례성이 증가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음’이라는 내용의 국회 전문위원 검토의견을 들며 “1·2당이 비례대표를 못 갖게 되면 당연히 위성정당을 만들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1소위원장이었던 김종민 민주당 의원은 “여기서 어떤 결정이 된다 하더라도 이게 끝이 아니다. 충분히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며 추가 논의를 막았다. 김 의원은 당시 정개특위 위원장이었던 홍영표 민주당 의원과 함께 당내 대표적인 ‘연합정당 참여론자’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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