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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밤낮없다, 5분 대기조"…'코로나 격무' 쓰러지는 공무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7일 대구 중구보건소 방역 요원이 서문시장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7일 대구 중구보건소 방역 요원이 서문시장에서 방역을 하고 있다. [뉴스1]

일명 ‘마스크 단속반’으로 불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 소속 유명종 수사팀장은 지난달 24일 오후 8시 40분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중국인들이 마스크를 대량으로 트럭에 옮겨싣고 있는데 수상하다”는 신고를 받았다. 곳곳에 나가 있던 단속반원이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9시 10분. 이틀 뒤인 26일 밤엔 “역삼역 카페인데 옆 테이블에서 마스크 1000만장을 인천 남동공단에서 거래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단속반과 경찰 4개 조가 바로 남동공단으로 출동했다. 두 사건 모두 위법 행위가 있었는지 조사 중이다. 유 팀장과 동료들은 단속반이 출범한 지난달 5일부터 휴일ㆍ밤낮없이 이런 식으로 일해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기승을 부리면서 최전선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나 대구ㆍ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파견한 의료진과 보건 인력뿐 아니라 후방 곳곳에서 지원하는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확진자와 직접 접촉할 위험도 많아 공무원 확진자만 현재까지 최소 10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공무원 자가격리자도 급증하는 추세다.

코로나 봉변에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고교 2학년 이모(17) 양이 5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들에게 감사하다며 그동안 모은 용돈 100만원을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기탁했다. 사진은 이양이 쓴 편지. [시흥시]

경기 시흥시 정왕동에 사는 고교 2학년 이모(17) 양이 5일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고생하는 공무원들에게 감사하다며 그동안 모은 용돈 100만원을 정왕본동 행정복지센터에 기탁했다. 사진은 이양이 쓴 편지. [시흥시]

지난달 28일 대구 달성군보건소 소속 공무원 A씨는 간호사와 함께 달성군 화원읍의 한 주택으로 출동했다. 확진 판정을 받은 20대 여성을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A씨가 집에서 자고 있던 그를 깨워 옮기는 과정에서 사달이 났다. 술에 취한 20대 여성이 앰뷸런스에서 자신을 내리려고 하는 A씨에게 “너도 걸려볼래”라며 얼굴에 침을 뱉었다. A씨는 즉시 격리됐고, 검체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20대 여성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1월 30일 우한 교민을 충북 진천 공무원 인재개발원과 충남 아산 경찰 인재개발원에 나눠 수용하는 과정에선 행정안전부 공무원들이 지역 주민 반발로 어려움을 겪었다. 교민 진입을 막기 위해 트랙터ㆍ지게차ㆍ경운기가 등장했다. 밤늦게까지 시위가 열린 시위를 막는 과정에서 멱살을 잡히고 물세례를 맞았다.

과로에 쓰러지고

지난달 28일 과로로 쓰러진 포항 북구 보건소 공무원. [포항시]

지난달 28일 과로로 쓰러진 포항 북구 보건소 공무원. [포항시]

지난달 27일엔 전주시청 공무원 B씨가 자택에서 코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됐다. B씨 가족은 “주말 없이 일하다 오후 11시쯤 들어와 ‘요즘 비상 업무가 많아 힘들다’고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B씨는 숨지기 전날도 신천지 교인 명단을 전수조사하느라 야근했다.

성주군청 공무원 C씨는 지난 2일 오전 11시 군청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다. 뇌출혈로 의식불명에 빠졌다가 결국 6일 숨졌다. C씨는 군청 재난상황실에서 근무해왔다. 성주군청 관계자는 “군청 직원 과반수가 밤늦게까지 비상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포항 북구보건소에선 감염관리팀장 D씨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입원했다.

5분 대기조 신세에

지난달 6일 식약처 마스크 단속반이 경기도 용인의 한 마스크 판매업체 창고에서 매점매석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6일 식약처 마스크 단속반이 경기도 용인의 한 마스크 판매업체 창고에서 매점매석 단속을 하고 있다. [뉴스1]

식약처 마스크 단속반은 하루 평균 200건의 신고를 받는다. 여러 사람이 공통으로 신고하고, 규모가 큰 경우 직접 현장조사에 나간다. 퇴근ㆍ휴일은 따로 없다. 단속반 차량 8대가 전국 곳곳을 쉴 새 없이 달린다. 신고가 밤낮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5분 대기조’처럼 있다가 출동하는 경우가 많다. 마스크를 사재기해 한탕주의를 노리는 사람 중엔 돌발 행동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몸싸움이나 도주극도 종종 일어난다. 단속반원 안전을 위해 항상 2인 1조, 혹은 3인 1조로 출동하는 이유다.

휴일 잊고 밤샘 야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 추경'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 추경'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현장뿐 아니라 지원 업무를 맡은 세종시 중앙부처 곳곳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엔 11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한 기획재정부 예산실 소속 공무원들이 격무에 시달렸다. 지난달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경 편성을 검토하라”고 주문한 뒤로 더 바빠졌다. 예산실 한 공무원은 “3주째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 퇴근을 이어가며 하루 4시간씩 잤다”며 “역대 최대 규모, 초스피드로 편성했다는 설명 이면엔 그만큼 시달렸다는 고충도 있다”고 털어놨다.

엄중한 재난 상황인 만큼 쉽게 과로를 언급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공무원은 주 52시간 근무제도 적용받지 않는다. 김창호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대변인은 “국민 안전을 위해 휴일도 잊고 밤낮 사투를 벌이는데 공무원이 쓸 방역 물품 지원마저 부족하다”며 “기존 인력으로 몰리는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이어 “관리 사각지대에 있는 공무원을 위한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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