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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11.7조 '코로나 추경' 만든 공무원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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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일 신종 코로나 추경 편성 당정협의에서 소상공인의 어려움에 대해 발언하며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2일 신종 코로나 추경 편성 당정협의에서 소상공인의 어려움에 대해 발언하며 울먹이고 있다. [연합뉴스]

고생 많았습니다.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11조7000억원 규모 ‘코로나 19 파급영향 최소화와 조기극복을 위한 2020년 추가경정예산안(추경)’ 얘기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수석ㆍ보좌관 회의에서 “추경 예산 편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기획재정부 예산실 공무원들이 밤낮ㆍ휴일 없이 매달렸다고 들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번 추경 편성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현 정부 들어 최대 규모 예산으로, 짧은 시간 내 최대한 노력을 퍼부어 초 스피드로 만들었다.”

얼마나 절박했을까요. 곳곳에서 경제가 어렵다는 신호가 울리는 만큼 어떻게든 추경을 통해 경기 둔화를 막고 싶었을 겁니다. 경기가 살아났으면 하는 것은 저도 여러분과 같은 바람입니다.

급히 편성한 만큼 ‘부실 추경’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저는 공무원 여러분께 추경 이후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최근 감사원이 공개한 ‘재정조기집행 점검’ 감사 보고서부터 일독을 권합니다. 감사원이 지난해 11월 미세먼지와 경기 둔화 선제 대응을 위해 편성한 추경 예산 사업 239개 중 68개를 들여다본 결과 예산 7조801억원 중 실제 집행한 예산(연말 추정)은 5조5000억원(78.1%)으로 나타났습니다. 연말 예상 집행률 97.3%(6조9000억원)보다 19.2%포인트 낮았습니다.

감사원은 집행률이 낮은 이유로 ▶사전준비 부족(24.7%) ▶수요 과다 예측(16.9%) ▶예산편성 부적정(12.4%) 등을 꼽았습니다. 추경을 편성할 때마다 나오는 단골 지적입니다. 감사원은 “최종 수요자에게 도달하지 않는 ‘밀어내기식 집행’ 때문에 실제 현장에서 체감도가 떨어진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번 코로나 추경안을 만든 공무원 대부분이 지난해 미세먼지 추경을 만든 주역인 만큼 따끔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현장 목소리는 더 따끔했습니다. 지난해 11월 추경 예산의 누수 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정부가 574억원을 들여 저소득층 246만명에게 1인당 연 50장씩 마스크를 보급한 현장을 추적했습니다. 기자가 집 근처 아파트 경로당에 들렀더니 1년 전 나눠준 마스크 200장 중 150장이 박스째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경로당에선 “이달 중 또 마스크가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마스크 대란’을 겪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얘기지만, 이렇듯 예산은 눈을 부릅뜨고 살피지 않으면 현장 곳곳에서 줄줄 샙니다.

역대 최대 규모 편성만큼이나 중요한 건 역대 최고 효율적인 집행입니다. ‘속도전’으로 푼 나랏돈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점검하고, 따져야 합니다. 예산이 경제 곳곳 모세혈관까지 빠르게 돌 수 있도록 북돋아야 합니다. ‘추경 AS’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신종 코로나로 망가진 경제는 추경이 아니라 추경 할아버지가 와도 못 잡습니다. 고생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기환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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