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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장쩌민 방일 실패 데자뷔···22년 전에도 우한이 문제"

중앙일보

입력

“22년 전에도 우한이 장쩌민(江澤民)의 국빈 방일을 발목 잡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4월 국빈 방일이 연기되면서 1998년 당시 연기됐던 장쩌민 전 주석의 방일 과정을 되짚는 분석이 나왔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중국 전문 칼럼니스트인 나카자와 가쓰지(中沢克二) 편집위원은 4일 기명 칼럼에서 “시진핑이 장쩌민의 불행한 선례를 따라가고 있다”고 논평했다.

2017년 10월 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오른쪽)이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2017년 10월 1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한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장쩌민 전 국가주석(오른쪽)이 시진핑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데자뷔’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두 사안이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시진핑도 목표했던 방일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도리어 중ㆍ일 관계에 앙금만 쌓았던 장쩌민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장쩌민 때는 대홍수로 연기

당초 장쩌민은 1998년 9월 초 방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중국에서 '40년 만의 최악'이란 평가를 받는 대홍수가 발생해 3600명의 사망자를 내는 등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가장 큰 피해를 낸 도시는 장강에서 가까운 후베이성 우한, 그리고 쑹화강을 낀 헤이룽장성 하얼빈이었다. 공교롭게도 두 도시는 시진핑의 방일 연기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시는 해마다 국제 빙등제를 열고 있다. 지난 5일 방문객들이 빙등제 조형물을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헤이룽장성 성도인 하얼빈시는 해마다 국제 빙등제를 열고 있다. 지난 5일 방문객들이 빙등제 조형물을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두말 할 것 없이 우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발원지다. 헤이룽장성은 사망자 수 등에선 중국 내 3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감염률 자체는 최고 수준이다. 특히 성도(省都) 하얼빈의 겨울 축제인 빙등제를 찾았던 방문객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후폭풍 

장쩌민은 방일 직전인 8월 21일이 돼서야 일정 연기를 공식 발표했다.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고심했던 것이다. 결국 그의 방일은 11월 26일로 미뤄졌다.

문제는 그사이 발생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10월 일본을 찾아 오부치 게이조(小渕恵三)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ㆍ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맺었다. 그런데 이때 일본 측이 식민지 지배와 관련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명문화했다.

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일본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1998년 10월 8일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일본을 국빈 방문중인 김대중 대통령(왼쪽)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이것을 본 장쩌민 정부는 일본 측에 한국과 같은 수준의 역사문제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중국은 한국과 달리 역사문제를 두 번 다시 제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면서 거절해버렸다. 앞서 김대중 대통령이 자신의 방일을 통해 과거사가 두 번 다시 문제되지 않게 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장쩌민 입장에선 체면을 크게 구겨버렸다.

이 문제는 방일 뒤까지 화근이 됐다. 장쩌민이 모욕감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는지 궁중 만찬회에 검은 인민복 차림으로 나타나선 일왕 앞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비판했다. 결국 그의 방일은 일본 측의 강한 반발만 부른 채 성과 없이 끝났다.

◇아베 우군도 "방일 취소하라"

시진핑의 방일도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현재 일본 국내에서 시진핑 방일을 반기는 분위기가 아니다. 여권은 물론 ‘아베 관저와 가장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 산케이신문조차 “시진핑 방일을 취소하라”(2월 19일자 사설)고 종용할 정도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악화되기 전만 해도 시진핑의 방일은 상당한 성과가 예상됐다. 특히 중국의 기대가 컸다. 중국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과 관계 개선을 통해 깊어지는 미ㆍ중 무역갈등의 파고를 넘으려 했다.

지난해 12월 23일 중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23일 중국을 방문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왼쪽)가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심지어 중국 지도부는 시진핑의 방일을 이번 사태 수습의 좋은 카드로 여겼다. 3월까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4월에 방일해 국제사회에 건재함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크루즈선 집단 감염 사태를 포함해 일본 국내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이 가속화하면서 이런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정치권과 매스컴은 연일 아베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고 있는데, ‘왜 사태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막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도쿄올림픽의 정상적인 개최가 불투명해진 점도 일본인의 심기를 건드린다. 원인을 제공한 중국이 사과는커녕 ‘발원지는 중국이 아닐 수 있다’는 식으로 책임 회피용 궤변을 늘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시진핑 환심사려다" 비판 직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향한 직접적인 비판도 쏟아진다. 산케이는 외신까지 인용해 “시진핑 방일 때문에 중국에 손타쿠(忖度ㆍ눈치보기)를 하다가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선 칼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의 자세를 아베 총리와 비교하기도 한다. 바툴가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등을 만나고 귀국한 뒤 수행단과 함께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I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칼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바툴가 대통령은 귀국 직후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AP=연합뉴스]

I지난달 27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칼트마 바툴가 몽골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를 하고 있다. 바툴가 대통령은 귀국 직후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AP=연합뉴스]

또 바툴가 대통령은 5000㎞나 맞대고 있는 국경을 봉쇄하면서도 자신은 방중해 중국에 양 3만 마리를 증정하는 등 철저히 양면 작전을 펼쳤다. 국민 안전을 챙긴다는 메시지를 강조하는 한편 중국과 관계는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한국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치권에선 여전히 ‘중국 봉쇄’에 대한 책임 공방이 오간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의원은 2일 국회 대정부 질의 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시진핑 환심 사려다 우리 국민 다 죽이겠다는 탄식이 나온다”고 질책했다. 이에 강경화 장관은 중국 출입국을 막지 않은 것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시진핑 방일은 도쿄올림픽 개최 준비 등과 맞물려 가을 이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방한 일정은 답보 상태다. 설령 시진핑이 양국을 찾는다 해도 득(得)보다 실(失)이 클 것이란 전망이 점점 깊어진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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