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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축가를 보라...프리츠커상 성 불균형 바로잡기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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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 파렐과 셰릴 맥나마라. [사진 AP=연합뉴스]

올해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일랜드 건축가 이본 파렐과 셰릴 맥나마라. [사진 AP=연합뉴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올해 수상자는 아일랜드의 여성 듀오 건축가로 선정됐다.
프리츠커상을 주관하는 하얏트 재단의 톰 프리츠커 회장은 3일(현지시간) 이본 파렐(68)과 셸리 맥나마라(67)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아일랜드 건축가가 이 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고, 여성 듀오 건축가가 받은 것 역시 사상 처음이다.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건축가들이 대부분 남성이고, 역사적으로 건축계가 남성 위주였던 점을 감안하면 여성 듀오 건축가의 이번 수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여성 건축가로는 2004년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가 처음 받았고, 이후 남성 동료들과 함께 설계사무소를 운영한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2010년), 스페인 건축가 카르메 피엠(2017년)등이 받은 바 있다. 여성이 주도하는 설계사무소의 대표로는 하디드 이후 두 번째인 셈이다.

프리츠커 회장은 파렐과 맥나마라에 대해 "지난 40여년간 건축가와 교육자로서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도시환경과 역사를 존중하며 새로운 공간을 창조해왔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어 "그들은 건축물이 지어지는 지역의 맥락을 살리고 힘과 섬세함의 균형을 조율하며 자신의 건축적 목소리를 내는 영향력 있는 작품을 빚어왔다"고 덧붙였다.

밀라노의 보코니 대학 외관. [사진 하얏트재단]

밀라노의 보코니 대학 외관. [사진 하얏트재단]

페루 리마의 공과대학 건물. [사진 하얏트재단]

페루 리마의 공과대학 건물. [사진 하얏트재단]

킹스턴대 타운하우스 건물. [사진 하얏트재단]

킹스턴대 타운하우스 건물. [사진 하얏트재단]

1978년 설계사무소 설립 

파렐과 맥나마라는 1974년 더블린 UCD 건축대학원에서 만났다. 1976년 졸업하자마자 각각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해 2015년 부교수로 임용됐다. 1978년 파렐과 맥나마라는 다른 3명과 함께 사무실이 있던 거리의 이름을 따서 설계사무소 '그래프턴 아키텍츠(Grafton Architects)'를 설립했다. 처음엔 다섯명으로 출발했지만 후엔 파렐과 맥나마라만이 남았다.

이들은 노스 킹 스트리트 하우징(2000, 아일랜드)등의 주택도 설계했지만 후에 아일랜드 도시 연구소, 로레토 커뮤니티 스쿨(2006, 아일랜드), 리머릭 대학교 의과대학(2012, 아일랜드) 등 많은 교육기관 설계를 많이 했다.

이들이 처음으로 국제 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것은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건축 축제에서 밀라노의 유니버시타 루이지 보코니(Milan, 2008) 프로젝트로 '올해의 세계 건축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 후 세계 각지에서 큰 프로젝트가 줄이어 그들을 찾아왔다. 그중에서도 이들이 작업한 페루 리마 공과대학 캠퍼스(2015)는 "현대식 마추픽추"(뉴욕타임스)라 불린다. 이 건물은 특이한 지형 조건을 섬세하게 수용한 접근으로 주목 받았으며, 이 작업으로 두 사람은 2016년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로부터 제1회 국제상을 받았다.

"건축이 줄 수 있는 무료 선물 풍부" 

파렐과 맥나마라가 설계한 밀라노의 유니버시타 루이지 보코니 건물,[사진 하얏트재단]

파렐과 맥나마라가 설계한 밀라노의 유니버시타 루이지 보코니 건물,[사진 하얏트재단]

아일랜드 리머릭대학의 의과대 건물.[사진 하얏트재단]

아일랜드 리머릭대학의 의과대 건물.[사진 하얏트재단]

이번 심사위원들은 특히 두 사람의 '장소에 대한 깊은 이해'를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건축물이 지어질 장소, 그것이 수용할 기능, 특히 그곳에 거주하고 사용할 사람들을 위해 최고의 건축 품질을 일관되게 추구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와 문맥을 존중하며 현대적이면서도 환경과 도시에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선보여왔다"면서 "전통적으로 남성이 우세한 이 분야에서 그들은 철저한 직업정신을 갖고 모범적으로 자신들의 길을 개척해왔다"고 덧붙였다.

영국일간지 가디언 역시 "맥나마라는 건축을 '인간의 삶을 위한 틀'이라고 말해온 건축가"라며 "이들은 지난 40년 동안 어떤 지역사회의 건물이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건물을 지어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들이 설계한 건물엔 환기가 잘 되는 아트리움, 널찍한 계단, 주변을 잘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층간 공간, 어슬렁거릴 수 있는 장소 등이 많다"면서 "건축이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무료 선물'을 풍부하게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가디언은 또 "이번에 프리츠커상이 이들에게 돌아간 것은 그동안 이 상에 있었던 커다란 성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작은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두 사람은 페루의 리마에 있는 새로운 공대 캠퍼스를 설계할 때 바람과 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다"면서 "두 사람이 2020년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은 자연적 요소에 대한 감수성뿐 아니라 협업에 대한 강조와 같은 자질 때문"이라고 전했다.

"건축은 우리의 일상생활을 매만지는 것" 

파렐 광장 문화센터 도서관. [사진 하얏트재단]

파렐 광장 문화센터 도서관. [사진 하얏트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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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나마라는 수상 소식을 듣고 "우리에게 설계를 의뢰해 우리가 꿈꾼 건축물이 실현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의 야망과 비전이 인정받아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건축은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매만지는 것이며, 시각적인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츠커상은 살아있는 건축가를 대상으로 매년 수여되며 흔히 "건축가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상금은 10만 달러(한화 약 1억 2000만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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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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