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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자국민 철수 땐 한국 충격파"···외교부, 코로나 방어 총력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자국민에 대해 한국의 대구 지역을 '여행하지 말 곳'(4단계)으로 분류했다.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29일(현지시간) 미 국무부는 자국민에 대해 한국의 대구 지역을 '여행하지 말 곳'(4단계)으로 분류했다. [국무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 국무부가 29일(현지시간) 한국 대구에 대해 여행경보를 최고수준인 금지 권고(4단계)까지 상향하자, 외교부가 미국발 ‘코로나 장벽’을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섰다.

"미국은 '코리아 모델' 평가한다"고 했지만... 입국 금지·제한 전전긍긍하는 외교부

1일 외교부에 따르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과 전화 통화를 갖고 코로나 사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요청을 전달했다. 강 장관은 비건 부장관에게 “(한ㆍ미) 양국 간 교류를 불필요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미 정부의 과도한 조치는 자제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정통한 한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에 전달한 ‘과도한 조치’에는 우리 국민에 대한 입국 제한 문제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카운터파트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탈레반 평화협정 문제로 출장 중이어서 비건 부장관과 이날 통화했다.

이번 통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전날 코로나19와 관련한 추가 기자회견에서 “한국ㆍ이탈리아의 ‘특정 지역’에 대한 여행금지 조치를 단행할 것”이라고 한 직후에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특정 지역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후 국무부가 여행 경보 사이트를 통해 ‘여행하지 말 곳(do not travel to)’ 명단에 대구를 명시했다. 미국이 한국의 특정 지역에 대해 여행 금지 권고를 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 정부는 일찌감치 중국(2월 2일)과 이란(2월 26일)에 대해서 여행금지 권고를 한 데 이어 이들 국가를 방문한 외국인의 입국 금지를 시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도 여행금지→입국제한의 수순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 정부는 중국 우한에 대해서도 전세기로 실어나른 적이 있는 만큼 대구 체류 자국민에 대해 ‘철수 권고’ 비슷한 시그널만 내더라도 한국은 경제ㆍ외교적으로 강타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1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정경두(왼쪽) 국방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이 마스크를 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1일 서울 종로구 배화여고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에서 정경두(왼쪽) 국방부 장관과 강경화 외교통상부 장관이 마스크를 낀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조치는 자국민에 대한 권고(advisory)일 뿐, 대구 지역에 있는 주한미군이나 자국민이 귀국해야 한다거나 대구발 입국자들의 입국을 제한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는 신중"이라지만..비상 걸린 외교부 

이수혁 주미 대사가 1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이수혁 주미 대사가 1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박현영 특파원]

외교부 내에서는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는 미 정부가 매우 신중하게 보고 있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그러나 물밑에서는 비상이 걸렸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관련 첫 ‘원 포인트 기자회견’을 예고했던 26일(현지시간)을 전후해 워싱턴의 주미 한국 대사관은 분주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이수혁 주미대사를 비롯한 각 레벨에서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인사들과 국무부 고위급 인사들을 면담하면서 한국 정부의 방역 대책을 소상히 알렸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한국에 대한 여행 제한을 묻는 질의에 “아직은 적당한 때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국무부는 정반대 시그널을 냈다. 한국 전역에 대한 여행경보를 ‘여행 재고’에 해당하는 3단계로 상향 조정한 것이다. 그로부터 딱 사흘 뒤 대구가 여행 금지 지역으로 묶인 것이다.

외교부 본부도 미 정부의 추가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부는 출입 기자단에 지난 27일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해 차관 또는 차관보 차원에서 매일 언론 브리핑을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 외교부가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공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런 정부의 언론 대응 방침은 역으로 미 정부에도 전달됐다고 한다. 그만큼 “코로나19 방역 정보를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미국이 대구 지역을 여행 금지한 1일에도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브리핑을 자청했다. 이 당국자는 “여행 경보 상향을 미 정부가 결정하자마자 한국에 사전 설명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조치와 관련해 한국 측과 사전 협의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당국자는 “(미 정부의) 공통된 반응은 한국이 철저한 검사를 시행하고 있고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면서 “주미 대사관은 미국 공무원 중에는 ‘코리아 모델’이라고 (언급)한 사람도 있다고 보고했다"고 소개했다. 외교부가 주미 대사관 정보보고까지 공개한 것은 이례적이다.

'코리아 모델'과 관련, 이 당국자는 “우리는 하루에 1만5000건을 검사해 누적 검사 수가 9만905건이다. 이를 확진자 비율로 계산하면 570명당 1명을 검사한 것”이라며 “미국 74만명당 1명, 일본 6만명당 1명보다 많다”고 설명했다. 또 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이 지난달 28일부터 미국행 탑승객을 대상으로 출국 전 발열 검사를 하는 등 의료 검사를 강화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낙관하기만은 어렵다는 반론은 계속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외교부 당국자는 “향후 미 정부의 조치를 미리 단정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서울=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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