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감독상 홍상수 "나 자신 믿어야"…김민희 기립박수

중앙일보

입력 2020.03.01 16:00

업데이트 2020.03.01 17:18

홍상수 감독이 29일(현지 시간)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무대 뒤에서 '도망친 여자'로 받은 은곰상-감독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상수 감독이 29일(현지 시간)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무대 뒤에서 '도망친 여자'로 받은 은곰상-감독상을 들어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번 은곰상-감독상은 연출의 자유에 주는 상이다. 당신의 연출은 매우 자유롭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적이고 비관습적이다.”

29일(현지 시간) ‘도망친 여자’의 홍상수(60) 감독에게 은곰상-감독상을 선사한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사회자가 기자회견에서 건넨 말이다. 생애 첫 은곰상 트로피를 쥔 홍 감독은 이날 답변도 자유로웠다.

홍상수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3대 국제영화제 본상 첫 수상
베를린 "연출의 자유에 주는 상"
홍 "달콤한 무지에 머물려 애쓴다"

영화제 측 사회자가 이번 영화의 출발점을 묻자, “내가 일하는 방식은 일단, 시작하기로 결정부터 한다(The way I work is at first I decide to start)”고 영어로 답했다. 단순 명쾌한 첫 마디에 외신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과 '도망친 여자' 베를린 현지 일정에 함께한 배우 서영화, 김민희(오른쪽부터)도 감독상 수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사진 화인컷]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과 '도망친 여자' 베를린 현지 일정에 함께한 배우 서영화, 김민희(오른쪽부터)도 감독상 수상의 기쁨을 함께했다. [사진 화인컷]

홍상수 "달콤한 무지에 머물려 애쓴다" 

홍 감독은 이어 “장소를 정하고 배우들에게 일주일 뒤, 혹은 한 달 뒤에 찍자고 말한다. 장소를 돌아다녀 보면 촬영 일주일 전쯤 첫 장면이 떠오른다”며 “나 자신을 믿어야만 한다”고 했다. “그 장면을 촬영 첫날 찍고 집에 가서 그 장면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나아간다”고 했다.

영화에 자유로운 상상을 담는 비결로는 “나는 대전제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차례로 다가오는 작은 디테일들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게 내가 가진 전부”라면서 “작은 디테일에 머물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또 “내가 하고 있는 것(영화)에 대해 섣불리 정의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종의 달콤한 무지(sweet blindness)에 머물려고 애쓴다”고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답변했다.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맨 왼쪽)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 무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그의 왼쪽으로 올해 공식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등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화인컷]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맨 왼쪽)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 무대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그의 왼쪽으로 올해 공식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 등 심사위원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화인컷]

3년 전 은곰상 김민희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의 24번째 장편이자, 연인이자 배우 김민희와 7번째 함께한 작품이다. 3년 전 김민희는 열애 사실을 인정하고 선보인 홍 감독의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한국 배우 최초 베를린 은곰상-여자연기상에 호명됐다. 홍 감독보다 먼저 은곰상 트로피를 안았다.

당시 수상 무대에 오른 김민희는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감격했다.

“별처럼 빛나는 환희를 선물 받았습니다. 제가 오늘 받는 이 기쁨은 모두 홍상수 감독님 덕분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017년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했던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이날 김민희는 홍 감독과 함께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중앙포토]

2017년 베를린영화제 시상식에 참석했던 배우 김민희와 홍상수 감독. 이날 김민희는 홍 감독과 함께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여자배우상을 받았다. [중앙포토]

2017년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자배우상을 받은 김민희가 객석에서 수상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왼쪽에 앉은 사람이 홍 감독이다. [시네마 스코프 트위터 캡처]

2017년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여자배우상을 받은 김민희가 객석에서 수상의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왼쪽에 앉은 사람이 홍 감독이다. [시네마 스코프 트위터 캡처]

이후 기자회견에서 그는 “감독님의 대본에는 항상 재미있는 유머가 많다”면서 “제가 그것을 표현하는 데 서툰 점이 있지만 맛을 살리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홍 감독은 당시 마이크를 넘겨주려 하자 “이 회견은 그녀의 자리”라며 거절했다.

3년 후 올해 시상식에선 감독상에 호명된 홍 감독을 김민희가 감격하며 껴안았다. 수상 무대에 오른 홍 감독은 “허락한다면, 여배우들이 일어나서 박수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언급해, 객석의 김민희, 출연 배우 서영화가 일어나 함께 박수를 받았다.

유럽이 사랑하는 감독, 정작 상복은…

올해 감독상으로 홍 감독은 베를린 경쟁 부문에 진출한 지 4번 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첫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이전까지 ‘밤과 낮’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밤의 해변에서 혼자’ 등이 초청됐지만 수상은 김민희가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받은 여자연기상이 유일했다.

홍 감독은 그간 세계 3대 영화제에 수차례 초청되며 유럽이 사랑하는 한국감독으로 명성을 높였지만 정작 본상 상복은 따르지 않았다. 칸영화제에선 2004년 ‘여자는 남자의 미래’를 시작으로 이듬해 ‘극장전’(2005),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다른나라에서’(2012), ‘그후’(2017)까지 공식 경쟁 부문에 네 차례 진출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후 열린 수상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은곰상-감독상 트로피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29일(현지 시간) 홍상수 감독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시상식 후 열린 수상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은곰상-감독상 트로피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그를 두 번째 장편 ‘강원도의 힘’(1998)으로 칸에 처음 소개한 번외 부문 주목할만한시선에선 ‘오! 수정’(2000) ‘북촌방향’(2011) 등 4차례 초청돼 2010년 ‘하하하’로 이 부문 최고상을 받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 홍 감독은 실험성과 창조성을 중시하는 오리종티 경쟁 부문에 ‘옥희의 영화’(2010) ‘자유의 언덕’(2014)이 초청됐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최고상 황금사자상을 겨루는 공식 경쟁 부문에는 초청받지 못했다.

한국영화 3대 영화제 대상, 베를린만 남았다 

한국영화가 베를린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건 2004년 김기덕 감독이 ‘사마리아’로 받은 뒤 16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한국영화는 칸·베니스·베를린 등 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베를린을 뺀 2곳에선 모두 최고상을 차지한 바 있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에 앞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한편, 김민희를 비롯해 배우 서영화‧송선미‧김새벽‧권해효 등 홍상수 사단이 다시 뭉친 영화 ‘도망친 여자’는 올봄 국내에서 개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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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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