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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홍상수 예술가로서 성숙, 안톤 체호프에 견줄만"

중앙일보

입력

홍상수 감독(왼쪽)과 배우 김민희가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진출작 '도망친 여자'의 최초 공개 상영회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

홍상수 감독(왼쪽)과 배우 김민희가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경쟁 부문 진출작 '도망친 여자'의 최초 공개 상영회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

“Actually I haven’t decided(사실 난 결정하지 못했다).”

지난 25일(현지 시간), 홍상수(60) 감독의 스물네 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가 최초 공개된 독일 베를린영화제 기자회견장은 홍 감독이 영어로 건넨 첫 마디에 큰 웃음이 터졌다. “영화 제목의 도망친 여자는 결국 누구고,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냐”는 사회자의 첫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홍상수 감독 24번째 장편 '도망친 여자' #25일 제70회 베를린영화제서 최초 공개 #현지 외신 호평…홍감독 영어 답변 술술 #3년 전 연기상 김민희, 올해도 상 받을까 #

현지 취재진이 호응한 것은 자신의 직관을 따르는 홍 감독의 독특한 영화 제작 방식과 똑 닮은 답변이었기 때문이다. 홍 감독은 그날 촬영할 시나리오를 당일 아침에 써서 찍기로 유명하다.

"이 영화의 모든 여성 도망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신작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 기자회견 초반 그는 한쪽 눈이 불편한 듯 수차례 깜빡거렸지만, 막힘 없이 영어로 답변을 이어갔다. [AFP=연합]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신작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홍상수 감독. 기자회견 초반 그는 한쪽 눈이 불편한 듯 수차례 깜빡거렸지만, 막힘 없이 영어로 답변을 이어갔다. [AFP=연합]

홍 감독은 “(제목의 의미를) 결정할 수도 있었지만 결정하기 직전에 그만뒀다. 내가 왜 이 제목을 좋아하는지에 대해 매우 모호한 느낌만을 갖고 있다”면서 “사실 이 영화의 모든 여성이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있다”고 답했다.

20일 개막한 제70회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도망친 여자’는 홍 감독이 연인인 배우 김민희(38)와 일곱 번째로 협업한 작품이다. 홍 감독과 김민희, 또 다른 출연 배우 서영화(52)가 베를린 일정에 참석했다.

영화는 결혼 후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던 남편이 출장을 간 사이, 두 번의 약속과 한 번의 우연을 통해 세 친구를 만나게 되는 플로리스트 감희(김민희)를 따라가는 내용. 베를린 현지 반응은 우호적이다.

"홍상수의 미니멀리즘에 베를린 열광" 

영화 '도망친 여자'에서 김민희(왼쪽)가 연기한 주인공 감희와 감희가 첫 번째로 찾아가는 친구 역의 서영화. 서영화는 이번 베를린영화제에도 홍상수 감독, 김민희와 동행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영화 '도망친 여자'에서 김민희(왼쪽)가 연기한 주인공 감희와 감희가 첫 번째로 찾아가는 친구 역의 서영화. 서영화는 이번 베를린영화제에도 홍상수 감독, 김민희와 동행했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스페인 매체 ‘EFE’는 “홍상수의 미니멀리즘이 베를린을 열광시켰다”고, 미국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는 이 영화가 “흥미롭고 우스울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이 별로 말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 무엇을 말하게 될지에 대한 진정한 명상”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매체 ‘필름스테이지’는 “암탉들과 고양이들을 본 후에 감희는 입에 고기를 욱여넣으면서 자신이 항상 얼마나 채식주의자가 되길 원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며 홍상수식 유머가 빛난 장면을 짚어냈다.

영국 매체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이 영화의 섬세한 긴장감과 불편함에 관한 유머는 베를린 상영에서 따뜻한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홍상수, 막힘 없는 영어로 외신과 소통

홍 감독의 영화가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된 건 ‘밤과 낮’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밤의 해변에서 혼자’ 이어 네 번째. 김민희는 홍 감독과 2015년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로 처음 만나 2017년 열애 사실을 인정했으며,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2017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여자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5일 기자회견장도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홍 감독은 모든 질문에 영어로 답변했다. 느리지만 정확한 어휘로 외신과 직접 소통했다.

올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도망친 여자'의 홍상수 감독, 배우 서영화, 김민희가 25일 기자회견과 같은 날 진행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

올해 제70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도망친 여자'의 홍상수 감독, 배우 서영화, 김민희가 25일 기자회견과 같은 날 진행된 포토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AFP=연합]

영화의 출발점을 묻는 질문에 그는 “구조나 내러티브에 대한 완전한 아이디어 없이 촬영을 시작한다. 내가 하고 싶은 몇 가지 소재에서 출발해 그다음에 오는 것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 반응에서 무엇이 나오는지 본다”면서 “(주인공 감희가 첫 번째 친구를 찾아가는) 첫 챕터에 서영화씨 아파트 장면을 3일 동안 끝냈고 그때 내가 뭘 원하는지 대략 알게 됐다”고 했다.

"한국사회뿐 아니라 어떤 것도 일반화하지 않는다" 

한 독일 기자가 남한에 두 번 가봤다며 영화에 한국사회의 어떤 부분을 반영하려 했냐고 묻자, 홍 감독은 “한국사회뿐 아니라 어떤 것도 일반화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다”며 “난 늘 의도하고 제시하기보단 릴랙스하고 오픈된 상태에서 촬영하는 동안 내게 주어지는 것에 사로잡힌다”고 했다.

또 “삶은 어떤 종류의 일반화도 모두 뛰어넘는 것”이라며 “그냥 표면적인 것을 믿었다. 의미 없는, 단순한 대화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모르듯이 그냥 나 자신을 열고 믿으려고 계속 노력했다”고 거듭 말했다.

김민희 "의도 벗어나면 감독님이 잡아주셔" 

김민희가 25일(현지 시간)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서 외신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그는 통역을 통해 한국말로 답변했다. [로이터=연합]

김민희가 25일(현지 시간) 베를린영화제에서 열린 '도망친 여자' 기자회견에서 외신의 질문을 경청하고 있다. 그는 통역을 통해 한국말로 답변했다. [로이터=연합]

김민희는 여러 작품을 함께한 감독, 제작진과의 협업이 어땠냐는 브라질 기자의 질문에 “감독님이 써주는 대로 잘 외워서 전달하면 의미 있는 연기를 할 수 있다. 의도에서 너무 벗어나면 감독님이 잘 잡아주신다”며 “현장에서 배우들 간에 발생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서로의 반응이 있고 새롭게 감정이 생긴다. 집중해서 상황을 받아들이고 연기하면 자연스럽게 감정이 생기고 변화가 온다”고 답했다.

홍 감독은 김민희가 외신 질문을 되묻자 직접 부연 설명해주기도 했다.

홍상수, 영화음악도 직접 작곡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도망친 여자' 해외 포스터. 영화는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최초 공개됐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홍상수 감독의 새 영화 '도망친 여자' 해외 포스터. 영화는 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최초 공개됐다. [사진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이번 영화엔 홍 감독이 직접 작곡한 음악도 나온다. 스페인 기자가 극 중 두 번 흐르는 음악의 음질이 명확지 않더라며 이유를 묻자, 홍 감독은 “그 음악은 내가 작곡했는데 작은 기타와 피아노로 연주해 아이폰으로 녹음했다”고 밝혔다. “음질이 그렇게 좋진 않지만 (영화에 들어가도) 그냥 괜찮다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홍(상수)은 예술가로서 더욱 성숙했다. 그를 에릭 로메르나 우디 앨런에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제 안톤 체호프에 견줄 때가 됐다.”

베를린영화제는 ‘도망친 여자’ 소개 글에서 이런 찬사로 홍 감독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올해 세계 18편의 초청작이 겨루는 장편 경쟁부문 수상 결과는 폐막식 하루 전날인 29일(현지 시간) 발표된다.

김민희를 비롯해 배우 서영화‧송선미‧김새벽‧권해효 등 홍상수 사단이 다시 뭉친 이번 영화는 올봄 국내 개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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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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