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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 사단 마비시킨 신종 코로나, "북한만큼 무섭다"

중앙일보

입력

요즘 군대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북한만큼 무서운 존재”라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60만 장병 중 1만 명 이상을 격리할 만큼 위력적이라는 뜻에서다.

사상 초유의 간부 재택근무 등장 #격리 병사들 고립감과 무기력증 호소 #격리 장병은 휴대폰으로 소일 #격리 안된 장병은 업무 과중 시달려 #휴가·외박 장병엔 '대휴' 권하기도

28일 현재 장병 격리 인원은 1만400여명에 달한다. 편성 단위로 따지면 코로나19는 무려 1개 사단을 마비시킨 셈이다. 자연스레 군 대비태세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난 21일 오전 충북에서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증평군의 한 육군 부대 위병소에서 부대원들이 부식을 화물차로 옮겨 싣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부내 출입이 통제되면서 외부 차량은 아예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뉴스1]

지난 21일 오전 충북에서 첫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증평군의 한 육군 부대 위병소에서 부대원들이 부식을 화물차로 옮겨 싣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부내 출입이 통제되면서 외부 차량은 아예 부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뉴스1]

코로나19가 ‘국가 안보의 적’이라는 말은 건군 이후 처음으로 등장하는 몇몇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우선 사상 초유의 간부 재택근무 지침이 대표적이다. 국방부는 지난 27일 “대구지역 부대 내 감염 예방을 위해 이날부터 1주일 동안 한시적 비상근무체제로 전환한다”며 “지휘관 등 필수 인력은 영내 대기 근무를 하되 기타 인원은 자가 등 지정된 장소에서 예방적 격리상태로 기본 업무를 수행한다”고 밝혔다.

보안 문제로 외부 통신망 사용 등 영외 근무에 제한을 받는 군 특수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 휴가 중 대기 상태나 다름없게 됐다. 군 당국은 대구지역 간부 중 필수 인력을 55%로, 나머지 인원을 45%로 보고 있다. 이 지역 절반 가까운 군 간부들은 타의(?)로 정상 업무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일선 부대의 전투력 저하 현상도 불가피해졌다. 국방부는 지난 24일부터 야외 훈련을 전부 중단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각 부대에선 계획된 훈련을 실내 정신전력교육 등으로 대체하고 있다. 실전을 준비 못 하는 군대가 된 것이다.

처음 겪는 전염병 사태다 보니 야전에서는 이런저런 혼선이 벌어지고 있다. 전방의 한 부대에선 군내 코로나19 확진자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무렵 감염 방지책으로 비무장지대(DMZ) 내 수색·매복 작전을 한때 금지했다고 한다. 전방 부대 관계자는 “정확한 방침이 내려오지 않아 현장에서 잠시 혼선이 빚어졌다”며 “현재 필수 업무는 기존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증평군 모 부대 소속 A대위(31)가 지난 2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자 부대 앞 정문 초소에 군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를 서고 있다. [뉴시스]

충북 증평군 모 부대 소속 A대위(31)가 지난 21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로 판명되자 부대 앞 정문 초소에 군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를 서고 있다. [뉴시스]

격리된 장병들의 무기력증과 고립감도 문제다. 군 당국은 지난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전 장병을 대상으로 10일 이후 대구와 경북 청도·영천 지역에서 휴가나 외출·외박을 한 인원을 파악한 뒤 즉시 격리 조치를 진행하라는 지침을 전군에 내렸다. 이로써 하루 만에 6400여명이 격리됐다.

이들은 주로 휴대전화에 의존하면서 2주간의 기간을 버티고 있다고 한다. 강원 지역 한 간부는 “개인 간에 차이가 있겠지만, 휴대전화만 붙들고 골방에 있어야 하는 것에 대해 답답함을 호소하는 병사들이 상당하다”며 “격리되지 않은 병사들이더라도 감염 우려 때문에 예전처럼 자유롭게 체력 단련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지휘관 입장에선 장병들의 사기 진작책에 골몰할 수밖에 없다. 지난 22일 전 장병의 휴가·외출·외박을 통제하는 지침이 내려오자 일부 부대에선 주말 삼겹살 파티 등을 고육책으로 내놓고 있다.

군내 코로나19 사태가 얼마나 갈지 모른다는 불투명한 상황도 일선 부대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 22일 긴급 조치가 발동된 이후 일선 부대에선 이미 휴가를 나간 인원에 대해 2주간 대휴를 더 쓸 수 있게 했다. 잠복기를 감안해 최소한의 자가 격리 기간을 거친 후 복귀하라는 취지다.

경기 지역 한 장교는 “오는 3월 8일 휴가자들이 대거 복귀하는데 이들이 얼마나 격리와 위생 수칙을 철저히 지켰을지 모르겠다”며 “이날을 기점으로 격리 인원이 급증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우려했다. 지금도 격리장소가 부족해 1인 1실 격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추가 격리장소를 확보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격리되지 않은 인원들은 업무가 과중한 상태다. 예컨대 격리 병사 몫의 경계 근무와 불침번 근무까지 떠맡아야 한다. 전방 부대 관계자는 “아직 전방 경계 부대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지금은 남은 인원으로 업무 분담이 가능한 수준”이라면서 “격리 인원이 늘어나면 초소 조정 등 업무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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