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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재기 바람 분 이 위스키…도대체 무슨 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57)

서울의 한 주택가에 있는 작은 편의점. 하루 매출 수십만 원에 불과한 이 편의점에 처음 보는 손님이 찾아왔다. 정장 차림에 한 손에는 가죽 가방을 든 중년의 남자.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다른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구석에 있는 주류 코너로 향한다. 그리고 먼지 쌓인 술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던 그의 눈빛에 기쁨이 스며든다. 그러고는 같은 술 6병을 집어 계산대로 향한다. 한 병에 6만 3000원. 카드를 꺼내 잽싸게 계산을 마친 그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편의점을 빠져나간다. 2분 남짓 만에 하루 매출을 올린 편의점 주인은 의아할 뿐이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2020년 2월 전국의 미니스톱 편의점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어느 위스키 마니아가 미니스톱에 갔다가 500mL짜리 맥캘란 12년이 할인가에 판매되는 걸 발견했고, 그걸 사서 인터넷에 올리면서 ‘미니스톱 맥캘란 대란’이 일어났다. 사실, 이 맥캘란 12년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심이 안 가던 제품이다. 500mL짜리임에도 기존의 700mL 판매 가격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이라는 유통 채널의 특성상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맥캘란 대란’이 일어난 미니스톱 편의점. [사진 김대영]

‘맥캘란 대란’이 일어난 미니스톱 편의점. [사진 김대영]

그러나 맥캘란 위스키를 수입하던 에드링턴 코리아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위스키 마니아들은 에드링턴이 철수함으로써, 앞으로 맥캘란 판매가가 비싸질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또 미니스톱에서 살 수 있는 맥캘란은 병 모양이 바뀌기 전의 제품이라 ‘구형 위스키 프리미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도 구입 열풍을 확산시켰다.

전국의 미니스톱은 위스키 마니아의 ‘보물찾기’ 장소로 변했다. 이미 맥캘란이 동난 미니스톱에서는 ‘발주’가 이뤄지고 있다. 편의점 주인에게 의뢰해 맥캘란 위스키를 발주하는 것이다. 선결제하면 상품을 발주할 수 있는 편의점의 시스템을 이용했다. 여기저기서 발주가 이뤄지고 이렇게 산 맥캘란을 인터넷상에 자랑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어느덧 맥캘란 12년 재고는 사라졌고, 아주 외진 곳의 미니스톱이 아니라면 맥캘란 12년을 찾긴 힘들 것이다.

맥캘란 12년.

맥캘란 12년.

소비자가 시장에서 물건의 본래 가치보다 희소성에 집착하면 그 시장은 왜곡된다. 맥캘란 12년은 맛이 아주 뛰어나거나, 대체할 수 없는 맛의 위스키가 아니다. 그저 더는 생산 안 되는 병 형태에 담긴 위스키일 뿐이다. 맥캘란 12년을 몇 병을 사든, 그건 소비자의 자유다. 하지만 지불한 가격만큼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다른 수입 위스키들이 찬밥 신세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다. 잘못된 판단이 가져온 기회비용이 건강한 위스키 시장을 멍들게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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