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가 보살핌과 헌신의 아이콘? 그 진실은

중앙일보

입력 2020.02.21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53)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본 현수막에 ‘우렁각시’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지자체의 노인인력개발센터가 마련한 노인 일자리 사업에 우렁각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가사관리서비스가 필요한 30∼40대와 노인을 매칭하는 애플리케이션이라고 한다. 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노인은 청소·설거지 등 일반적인 가사관리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이맘때 보도된 기사를 찾아보니 “어르신 40명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가사서비스 교육을 받게 한 뒤 일반 가정에 투입하고, 앞으로 사업범위를 산후관리, 노인간호, 아이 돌보미, 반려동물 돌보미 등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우리 옛이야기에 나오는 우렁각시는 좀 억울하게 오해받는 캐릭터다. 이런 명명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빨래 다 해놓고 밥상 이쁘게 차려놓은 채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는 아리따운 부인을 연상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귀찮고 힘든 일을 누군가가 말끔하게 처리해 두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환상의 대리자가 우렁각시다.

그런데 실제 우렁각시 이야기는 ‘그렇게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살림하고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린 덕에 총각과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끝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오로지 나만을 위해 집안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환상적인 존재’로 우렁각시를 떠올려도 문제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총각과 함께 살게 된 우렁각시는 지나던 길에 우연히 그 범상치 않은 미모에 반한 고을 원님이 가로챘다. 밭일하러 간 사이에 부인을 원님에게 빼앗겼다는 것을 알게 된 노총각은 원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죽어 새가 되었고, 원님과 우렁각시가 다정하게 같이 있는 곳에 날아가 짹짹거리다 원님의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우렁각시는 그를 살강 밑에 고이 묻어 주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흔히들 말하기도 한다. 귀찮고 힘든 일을 누군가 나 없는 새 말끔하게 처리해 두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환상의 대리자가 우렁각시이다. [사진 Pxhere]

사람들은 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흔히들 말하기도 한다. 귀찮고 힘든 일을 누군가 나 없는 새 말끔하게 처리해 두길 바라는 것이다. 그런 환상의 대리자가 우렁각시이다. [사진 Pxhere]

혹시 눈치들 채셨는지 모르겠다. 우렁각시는 원님에게 납치당하다시피 끌려갔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 죽어서 새가 되었다가 또 죽어 버린 남편을 고이 묻어주고는 원님과 함께 알콩달콩 잘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야기의 발단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홀어머니 모시고 사는 가난한 노총각이 어느 날 “이 밭을 갈아 누구랑 먹고사나” 하고 신세 한탄을 했다. 어디선가 “누구긴. 나랑 먹고살면 되지” 하는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우렁이 하나 있기에 집에 갖고 와서 물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그날 이후 노총각이 일하고 들어와 보면 청소와 빨래가 깨끗이 되어 있고 고기반찬이 풍성한 따뜻한 밥상이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우렁이가 각시로 변한다는 걸 알게 된 노총각은 우렁각시 손을 잡고 함께 살자고 했다. 우렁각시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노총각이 막무가내로 끌어당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인간 모습으로 변한 뒤 부부 연을 맺고 살게 되었다.

어느 날, 우렁각시는 새참을 차려 시어머니에게 밭에 가져다주라고 하고 솥에 눌은밥을 긁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갑자기 샘이 났다. ‘저것이 나한테 새참 심부름시켜 놓고 저 혼자 맛있는 누룽지 먹으려고 그러는구나’ 싶어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못 가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렁각시가 새참을 이고 집을 나섰는데, 마침 말을 타고 지나가던 원님이 우렁색시를 보고는 데리고 가버렸다.

밥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새참이 오지 않아 화가 났던 남편은 씩씩거리며 집에 달려갔다. 전후 사정을 모두 알게 된 남편은 원님에게 색시를 빼앗긴 울분에다 색시를 밖으로 내보낸 엄마에 대한 원망까지 더해져 그 자리에서 죽어 새가 되었다. 그리고 원님이 사는 집으로 찾아갔는데, 원님이 부인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었다. 새가 된 남편이 그걸 보고 짹짹거리자 원님은 시끄럽다며 담뱃대로 새를 쳐서 죽여 버렸다. 우렁색시는 죽은 새가 남편인 것을 알아보고는 얼른 주워 살강 밑에 고이 묻어 주었다.

이 이야기의 시작 부분은 우리 옛이야기의 전형적인 서두를 닮았다. 늙으신 홀어머니, 가난한 살림, 나이 차도록 장가도 못 간 노총각. 그런데 이 정도 조건이라면 우리 생각으로는 가난한 살림을 일으켜 어떻게든 풍족하게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할 법도 하건만, 이야기 속 주인공은 그저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자기 신세를 한탄하기 바쁘다.

원님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갔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이는 우렁각시. 노총각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반면 원님과는 곧바로 함께 살게 되었던 데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Pixnio]

원님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갔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어 보이는 우렁각시. 노총각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반면 원님과는 곧바로 함께 살게 되었던 데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진 Pixnio]

이쯤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 것이다. ‘선녀와 나무꾼’의 나무꾼이다. 나무꾼이나 농사꾼 노총각이나 아주 흔한 ‘결핍인물’형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나무꾼도 선녀가 자신과 사는 것을 원하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노루가 알려준 대로 날개옷을 훔쳐서라도 자기 짝으로 맞이하려고 했다. ‘우렁색시’의 노총각 역시 우렁이가 색시로 변하는 것을 알게 되고는 곧바로 자기랑 같이 살자고 하면서 항아리로 다시 들어가려는 우렁이를 억지로 잡아끌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함께 잘사는 나무꾼이 아니라, 결국 엄마 보러 지상에 다시 내려왔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해 수탉이 되어 버리고는 구슬피 우는 나무꾼을 기억한다.

‘우렁색시’에서 자신이 원하던 걸 온전하게 얻은 이는 우렁각시와 원님이다. 거기까지 가야 이 이야기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우렁각시가 새참을 머리에 이고 집을 나섰다가 원님 일행을 보고는 풀숲에 몸을 숨겼는데, 지나가던 원님은 풀숲에서 뭔가 번쩍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 빛은 바로 우렁각시가 있는 곳에서 발하는 것을 보고 원님은. 우렁각시를 데려가 버렸다. 새가 된 남편이 원님 앞에서 짹짹거릴 때 그 노랫말은 이렇게 소개된다. “는들는들 늬 탓이냐? 낸들낸들 내 탓이냐? 부모 한 탓이제” 그저 탓하고 원망하는 이기적인 욕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숨어도 감출 수 없었던 빛나는 존재. 그걸 알아본 원님. 원님에게 납치당하듯 끌려갔지만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이는 우렁각시. 우렁각시가 왜 굳이 가난한 농사꾼 노총각에게 함께 살자고 했던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노총각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했던 반면 원님과는 곧바로 함께 살게 되었던 데서 이해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온전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 자격을 얻는 것이 중요했던 우렁각시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어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모두 살폈을 때 우렁각시를 여전히 보살핌과 헌신의 아이콘으로 이해해도 될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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