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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뿔도 몰랐냐” 시부모가 며느리한테 했다는 이말 뜻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50)

쥐띠해가 밝아왔다. 쥐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십이간지 동물 중에 제일 첫 번째 서열이다 보니 잽싸고 영리하다는 속성으로 소비된다. 그 유명한 ‘톰과 제리’에서도 어리숙한 고양이 톰은 자디잔 쥐 제리에게 늘 당하기만 한다. 속어에서도 쥐는 흔히 등장하는데, ‘쥐새끼 같은 놈’이라는 표현에 와서는 약삭빨라서 자기 이득만 취하고 쪼르르 달아나는 얄미운 성격으로 자리 잡는다.

지금 소개하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쥐에도 어느 정도 이런 성격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진짜인 척 행세하는 가짜, 사기꾼 쥐이다.

쥐는 십이간지 동물 중에서 첫번째 서열로, 잽싸고 영리하다. '톰과 제리'에서도 어리숙한 고양이 톰은 쥐 제리에게 늘 당한다. 영화 '톰과 제리' 포스터.

쥐는 십이간지 동물 중에서 첫번째 서열로, 잽싸고 영리하다. '톰과 제리'에서도 어리숙한 고양이 톰은 쥐 제리에게 늘 당한다. 영화 '톰과 제리' 포스터.

옛날에 어떤 집에서 어린 아들을 장가들였는데 아들이 공부는 안 하고 색시만 좋아하니까 부모가 야단을 쳤다. 아들은 화가 나서 삼 년 동안 집에 오지 않겠다고 하고는 공부하겠다며 절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가 놓고는 색시 생각도 나고 해 집에 다시 돌아왔는데,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아들 행세를 하면서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부인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이 남편이라고 했다. 갑자기 아들이 둘이 생긴 부모는 집안 살림살이를 잘 아는 이가 자기 아들이라며 시험 쳐보자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집 밖에 나가 있었던 아들은 곳간에 무엇이 얼마나 있는지, 부엌살림에 어떤 것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집에 있던 아들은 숟가락 개수까지 정확하게 다 말을 하는 것이었다. 결국 쫓겨난 아들이 절에 가서 억울한 일을 하소연했더니 스님이 십 년 묵은 고양이를 내주며 다시 찾아가 보라고 하였다. 진짜 아들이 고양이를 소매에 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고양이는 가짜 아들을 물어 죽여 버렸다. 가짜 아들은 쥐가 변해 사람 행세를 했던 것이었다. 그제야 진짜 아들이 부모를 타박했고 무안해진 부모가 괜히 며느리에게 “쥐뿔도 몰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손톱·발톱을 깎아 함부로 버리면 쥐가 그것을 먹고는 사람으로 변신해 해코지한다는 생각 덕분에 나오게 된 것이다. 부모는 자기 자식을 못 알아본 것이 민망하니 괜히 며느리를 타박했다. 한 방 쓰는 부부 사이에도 진짜 가짜를 그렇게 못 알아보았느냐는 타박이었다.

『옹고집전』에서는 인색한 옹고집이 동냥 온 중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도사가 옹고집을 혼내 주기 위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고 진짜 옹고집은 크게 참회하게 된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옹고집전』에서는 인색한 옹고집이 동냥 온 중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도사가 옹고집을 혼내 주기 위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고 진짜 옹고집은 크게 참회하게 된다. [사진 한국학중앙연구원, 유남해]

이 이야기에는 다양한 변이형이 있는데, 애초에 주인 아들이 함부로 버린 손톱을 먹은 쥐가 아들로 둔갑해 나타난다. 혹은 며느리가 쥐에게 먹을 것을 갖다 주었는데 그 쥐가 아들로 둔갑하기도 한다. 원님까지 나서서 재판한 결과 진짜 아들이 쫓겨나기도 하는데, 고전소설 『옹고집전』은 인색한 옹고집이 동냥 온 중을 학대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진다. 도사가 옹고집을 혼내 주기 위해 초인(草人)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보내는 바람에 관가에 송사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진짜 옹고집이 쫓겨나서 비관 자살하려는데 도사에게 구출된 후에 크게 참회한다는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진가쟁주(眞假爭主). 진짜와 가짜가 서로 진짜 주인이라고 싸운다는 말이다. 고전서사에서 흔한 모티프 중 하나이다. 이 이야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누가 진짜인지를 알기 위해 집안 살림을 얼마나 잘 아는지 시험을 거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행세를 하는 가짜가 진짜보다 집안 살림을 더 잘 안다. 게다가 부인도 자기 남편을 못 알아보고 재판이 열렸을 때 가짜가 자기 남편 맞다고 우기기도 한다.

이 이야기 속에서 아들은 부모와 불화가 생기자 집을 떠나 버렸다. 다소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들은 손톱을 깎을 때마다 함부로 버리거나 마루 밑에 쌓아두기도 하는데, 이 또한 좋은 습관은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손톱 깎은 뒤처리도 깔끔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생활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집안 살림살이에 관심을 가지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너무 일방적으로 깎아내리는 시선이 되겠다.

하긴 어떤 자식인들, 집안 서까래 개수까지 알고 살겠는가 말이다. 혹은 접시가 어디에 몇 개나 있는지 부엌살림을 하는 당사자도 정확히 알고 있기는 힘들다. 진짜와 가짜의 싸움이 붙었을 때 진짜를 가려내기 위해 서까래가 몇 개인지, 접시가 몇 개인지 물어보는 시험이라니 좀 너무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정작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부인도 가짜 남편을 못 알아봤다는 것이다. 부부는 동침하는 사이라는 게 기본 전제이고 보면 이 상황을 해석하는 일에 자못 심각해진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가정을 떠올려볼 수 있다. 이 부인은 정말 가짜 남편을 알아보지 못했던 걸까. 혹시 알아차리고도 가짜 남편을 두둔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부인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첫째는 가짜가 너무 훌륭하게 진짜 역할을 했다는 것을 가정할 수 있다. 너무도 감쪽같아서 잠자리에서도 못 알아본 것이다. 이 정도 사기꾼 이야기야 흔하다. 둘째는, 혹시 부인이 가짜 남편을 좀 더 좋아했을 가능성이다. 부모에게 타박 좀 들었다고 집 나가버리는 무책임한 남편보다는 언젠가 슬쩍 돌아왔는데 살갑게 잘 대해주고 성실한 사람이었다면 뭔가 이상하다 하면서도 그쪽으로 마음이 쏠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은 늘 뜨고 지는 것이기에 새해라고 유별나게 새로울 일도 없지만, 새로워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유독 어떤 날 말 그대로 '날 잡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중앙포토]

해와 달은 늘 뜨고 지는 것이기에 새해라고 유별나게 새로울 일도 없지만, 새로워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유독 어떤 날 말 그대로 '날 잡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중앙포토]

진가쟁주 모티프를 가진 이야기에서는 보통, 가짜가 진짜보다 훨씬 더 진짜 같아서 일이 더 꼬여간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이야기는 그래서 결국 진짜에게 일종의 경고를 날린다. “똑바로 잘해” 하고. 가짜는 결국 정체가 밝혀지게 마련이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는 자신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자신을 증명하는 데에는 스승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제삼자가 나타나야만 일이 해결되기도 한다.

경자년(庚子年) 새해가 밝아온 지 열흘 남짓 지났다. 해와 달은 늘 뜨고 지는 것이기에 딱히 어느 날이라고 해서 유별나게 새로울 일도 없다. 다만 새로워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유독 어떤 날 말 그대로 ‘날 잡고’ 새로워지고자 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주변을 돌아보고, 가장 가깝고 친밀한 곳, 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누일 수 있는 그 공간의 구석구석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 보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접하고 단지 부엌의 접시 개수나 세고 있다면 그 또한 허망한 일이다. 좀 더 시선을 두어야 할 곳은 가장 가깝고 친밀한 그 사람의 마음이다. 진짜 관계라는 것은 단지 내가 그 사람에게 남편이다, 부인이다, 부모다, 자식이다 하는 그 이름으로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이름 아래 관계 맺고 있는 상대를 진심으로 바라보고 상대가 원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온 마음을 다했을 때 그 관계는 진짜가 되는 것이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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