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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부총리 사퇴 거부 - 당·청 관계 최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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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30일 영등포 당사에서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거취 문제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 의장 오른편으로 이계안 의장비서실장과 우원식 사무부총장이 배석했다. [연합뉴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은 28일 김 부총리를 직접 만나 "당내 분위기가 심상찮다"며 "억울한 점이 있더라도 한계점을 넘어서면 결단할 때는 결단해야 한다"고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김 의장에게 "해명할 기회를 달라"고 답했다. 그리고 30일엔 사퇴 요구를 일축하면서 '청문회 카드'를 빼들었다. 퇴진 여론을 정면대결로 돌파하겠다는 의사 표시다.

열린우리당에선 그의 수용 거부 의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래서 여론과 민심을 전달하는 창구로서 당의 존재가 무시된 상황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김 의장이 보다 강력하고, 분명하게 노 대통령에게 상황 전달을 했어야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들린다.

◆ 당.청 관계 파국으로 치닫나=김 부총리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지자 '용퇴'를 기대해 온 의원들은 망연자실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의 청와대 정무비서관 출신인 문학진 의원은 "당에서 스스로 진퇴를 결정해 달라고 했으면 이를 존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도 그냥 자리에 앉아 있겠다는 것은 당을 무시하는 처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초선인 유승희 의원도 "국민 여론이 사퇴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당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 핵심 인사였던 김 부총리가 혼자 거취를 결정했을 것 같지는 않다"며 "이런 정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당.청 관계의 또 다른 뇌관은 '문재인 법무부 장관 카드'다. 열린우리당은 28일 공석 중인 법무부 장관 인선과 관련해 노 대통령의 측근인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기용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만약 청와대가 '문재인 카드'까지 밀어붙일 경우 당.청 관계는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 민심 소통 역할이 무너졌다=이번 사태는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민심 전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으로 당내 인사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김 의장은 "흐트러진 당.정.청 전열을 다시 세우겠다"고 공언해 왔다. 청와대와 정부에 국정 쇄신을 요구하고, 당 지도부에 이를 견인하라고 집단 성명까지 낸 일부 초선 의원들은 "김 의장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며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무시당해야 하느냐"며 "당.청 관계를 근본적으로 생각할 때가 왔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석현 비상대책위원은 "당에서 수렴된 여론을 전했다면 청와대와 정부는 충분히 숙고하고 고민해야 한다"며 "(정부와 청와대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당의 의사 소통 기능에 대해 국민이 심각하게 우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숭실대 강원택(정치학) 교수도 "노무현 정부가 국민에게서 외면당하는 것은 민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당 의장이 건의한 사안을 김 부총리가 거부한 것은 민심 전달 기능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라고 말했다.

◆ 여, 교육위원 일부 "진상조사단 꾸려야"=김 부총리의 청문회 요청에 대해 여야는 "부적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김 부총리가 정말로 자신 있다면 청문회보다는 '두뇌한국(BK)21'사업 전반의 문제점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요구했어야 옳다"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청와대가 비호하니 김 부총리가 어이없는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도 "그런 청문회는 전례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 교육위원의 기류는 다소 달랐다. 정봉주.최재성.김교흥 의원은 "사퇴에 앞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 의원은 "교육위원 전체 분위기가 진상조사단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라며 "김 의장에게 이를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신용호.채병건.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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