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상희<과기처장관>4위의 체육, 40위의 과학 수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우리 13세 어린이들의 수학과 과학의 학습능력이 미국과 영국등 선진국에 앞선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지난 9월 18일자 타임지는 보도한바 있다.
우리의 어린 새싹들의 과학에 대한 탁월한 능력을 확인한 것이다. 더욱이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한 정보화사회·지식사회가 될 것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가장 확실한 미래자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국력의 우열이 자라나는 새싹들의 자질과 능력으로부터 비롯되어 판가름난다고 생각해보면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중앙일보가 주관한 제1회전국 고교생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많은 우수청소년과학도들이 배출된 것은 과학영재의 조기발견이란 의미에서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겠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그 나라 젊은이들의 역량이 그 민족의 융기와 침몰을 가름지었다. 로마제국을 건설한 로마의 젊은이가 그랬고, 대원제국을 건설한 몽고의 젊은이가 그랬으며,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화랑도가 그랬다. 그 젊은이들은 모두 진취적인 기상과 강건한 힘을 지녔다. 또한 국가는 그들의 에너지를 조직화하여 국가발전과 국운개척에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우리가 사는 오늘과 내일의 국가간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은 진취적인 기상과 강건한 힘뿐만 아니라 우수한 과학두뇌로부터 나온다. 왜냐하면 방대한 영토를 지배하여야만 세계를 주름잡던 시대나 자원과 에너지를 무기로 하여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기 때문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첨단과학기술이 국력을 좌우하는 과학기술주권시대다.
따라서 우리 나라가 선진국으로의 도약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결국은 과학기술 발전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이제 자라나는 새싹들을 통해 장래 우리민족의 융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들의 탁월한 과학능력을 개발하여 창조적인 민족에너지로 승화시키고, 이를 결집하여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우리시대의 가장 큰 소명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우리에게는 빛나고 자랑스런 과학기술의 역사와 전통이 있었다.
동양 최고를 자랑하는 천문대의 현존유물인 신라시대의 천성대가 있었고, 유체역학의 첨단기술로 이루어진 포석정이 있었으며, 고려 요업기술의 정수인 고려청자가 있었다.
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인쇄기술이 발명되었고,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써서 강우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했으며, 세계최초의 철갑선인 거북선이 있었다.
우리민족의 과학기술에 대한 저력은 상당하다.
현재 일본과학기술의 뿌리도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나오지 않았는가. 그들 역사책의 기록을 살펴보더라도 신라의 우수한 선공이 일본조선기술의 시조가 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건너간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요업기술의 기반을 닦았다.
또한 백제·신라·고구려 인들의 손에 의해 제작된 일본 곳곳의 국보급 유물들을 통해서 우리조상들의 빛나는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우리 과학의 실상을 살펴보자.
세계 제1위의 기능, 4위의 체육, 12위의 경제능력을 가진 우리 나라의 과학수준은 40위에 불과하다.
지난 87년도에 발표된 전세계 국가별 과학논문수의 순위에서 우리 나라는 총1천1백78편으로 40위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는 4천8백90편으로 23위를 차지한 가까운 중국이나 1천5백10편으로 37위인 대만보다도 처진 수준이다. 특히 5만4천8백13편으로 3위를 차지한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논문발표수가 우리 나라 과학수준을 가늠케 하는 척도가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조상들의 자랑스런 과학기술 전통과 유산 앞에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더욱이 우리는 현재 그 동안 벌어놓은 얼마 안 되는 재원을 과소비하고 향락산업이나 부동산투기 등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부문에 쏟아 붓고 있다.
우리의 13세 어린이들이 훌륭한 우리 조상들처럼 세계최초·최고의 발견과 발명을 이룩하는데 우리세대가 길을 열어주고 안내하지는 못할 망정 그들에게 부담을 지우고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히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1957년 스푸트니크 충격이후 미국은 과학영재의 부족이 국가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인식하면서, 국방교육법(NDEA)을 제정하여 과학영재 양성을 범 국가적으로 중점 추진하였다. 우리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과학적 능력과 자질을 개발하고 과학영재로 키우기 위한 미래의 청사진을 세우고, 투자를 과감히 늘려 나가야 한다.
우선 그들에게 꿈과 이상을 불어넣어 주어야 하고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동기도 부여하고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한다. 새로운 과학기술발견이나 발명은 인간의 꿈·이상과 그리고 탁월한 상상력의 산물이었다. 새처럼 날고싶은 인간의 꿈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달나라에 대한 신비한 상상력이 우주시대를 열었던 것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꿈과 이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최근 발족한바 있는 우주소년단 같은 정책적 대안을 부단히 개발하여야 한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50%가 그들이 20대에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의 박사학위 취득 시 평균연령은 23·4세에 불과하였다. 더욱이 아인슈타인·페르미·유키가와 등 13명의 과학자가 그들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획기적인 신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20세에 노벨상을 수상한바 있다. 특출한 과학영재의 조기 양성이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교육체계 내에서 과학영재를 양성할 수 있는 시책을 적극 전개해야한다. 앞으로 국제적으로 기술보호주의가 심화되고 과학기술경쟁이 가속화될수록 과학기술계 지도급인물이 외국에서 양성되어 오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다.
또한 반드시 금세기 이전에 우리민족의 탁월한 저력을 바탕으로 노벨상에 도전해야 한다. 일본도 명치유신이후 80년만에 그들의 학교교육을 통하여 과학부문의 노벨상수상자를 배출하지 않았던가.
노벨상수상은 몇몇 천재들의 노력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모두가 과학정신을 함양하고 창조적으로 사고함으로써 우리의 과학영재가 정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국민적 에너지를 축적해나가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한다. 한 세대가 희생하면 다음세대는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다. 우리 세대는 21세기에 가능성 있는 우리의 새싹들을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시키고 빛나는 민족의 황금시대를 열기 위하여 희생하여야 한다.
우리가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미래의 과학기술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여 역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창조적인 소수를 서둘러 양성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체계를 발전적으로 개편하고, 기초과학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며, 첨단기술도 국책적으로 개발해 나가야 한다. 지금의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간의 경쟁은 바로 세계, 그리고 미래를 향한 패권다툼이다.
이러한 인식 하에 선진제국은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기초과학에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과학기술분야를 국력을 기울여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이제 민족의 저력을 바탕으로 도전할 때가 왔다. 인류역사상 가장 급속히 발전·변화하는 첨단과학혁명 속에서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우리의 13세 어린이들의 과학적 능력과 자질을 개발하고 양성하여, 포성 없는 전쟁이라고 불리는 과학기술경쟁에 뛰어들어 세계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도전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민족융기의 기미를 바로 보지 못한 채 우리의 귀중한 미래 자원을 역사발전으로 연결·활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다시 1백년전의 실수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