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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 역사 됐다…충무로, 오스카 정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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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인 폰다(뒷모습)로부터 최고상인 작품상 트로피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봉 감독은 송강호·조여정 등 배우들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AP=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오른쪽)이 9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인 폰다(뒷모습)로부터 최고상인 작품상 트로피를 받으며 환호하고 있다. 봉 감독은 송강호·조여정 등 배우들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AP=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 영화 101년의 역사, 나아가 미국 아카데미상 92년의 역사를 다시 썼다. 한국 영화 사상 처음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기생충’은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9일(현지시간) 열린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해 4개 부문을 석권했다. 한국 영화가 오스카(아카데미의 별칭) 트로피를 받은 것도, 영어 아닌 언어로 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도 처음이다. 공동 프로듀서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작품상을 받은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지금 이 순간 상상도 못한 역사가 이루어진 기분이다. 아카데미 회원분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기생충, 아카데미 4관왕 쾌거 #비영어 영화 작품상 사상 처음 #칸·아카데미 동시 석권 두 번째 #101년 한국영화, 세계 매료시켜 #아시아 영화 최초로 각본상 받아 #감독상 수상한 두 번째 아시아인 #봉준호 “비영어 1인치 장벽 부서져 #가장 한국적인 것에 세계가 반응”

언어장벽도 허물었다 … NYT “영어 아닌 영화로 첫 작품상”

9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등 주요 출연진. [로이터=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영화 ‘기생충’의 송강호 등 주요 출연진.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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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 직전까지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은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 가장 강력한 후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배경인 ‘1917’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세운 앰블린파트너스가 제작한 데다 앞서 골든글로브 작품상·감독상 2관왕,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7관왕에 올랐다. 게다가 시대극·실화 바탕 영화에 우호적인 아카데미 수상 경향과도 맞아떨어져 수상 예측 사이트 골드더비 등에서 작품상 수상 가능성 1위로 점쳐졌지만 ‘기생충’이 예상을 뒤집고 파란을 일으켰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기생충’이 "영어가 아닌 영화로 처음 작품상을 수상했다”며 “역사를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이번 수상은 최근 아카데미가 백인 위주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회원 구성을 다변화한 것 등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왼쪽)와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각본상을 받은 한진원 작가(왼쪽)와 봉준호 감독. [EPA=연합뉴스]

이날 ‘기생충’의 수상 행진은 봉준호 감독과 한진원 작가가 각본상을 받은 것으로 시작됐다. ‘기생충’은 이어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차례로 트로피를 챙기면서 한국 영화의 역사는 물론 아카데미상 역사에서도 새로운 기록을 쏟아냈다. 아시아 영화가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은 것 역시 ‘기생충’이 사상 처음이다. 아시아인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것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에 이어 봉준호 감독이 역대 두 번째다. 앞서 이안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감독상을 받았다.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되자 봉준호 감독은 “국제영화상 수상하고 내 할 일은 끝났구나 했는데 너무 감사하다”며 놀라움을 표했다.

배우 브래드 피트(오른쪽)가 감독상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을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배우 브래드 피트(오른쪽)가 감독상에 호명된 봉준호 감독을 축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상식 직후 무대 뒤 회견에서 현지 기자들은 비영어 영화 최초로 작품상 등을 휩쓴 ‘기생충’의 성공 요인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아시아 영화로서 갖는 의미와 영향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이었다. 봉 감독은 “이전 작품인 ‘옥자’는 한·미 합작 프로덕션이었는데 그 영화보다 오히려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찬 ‘기생충’이란 영화로 더 여러 나라에서 반응을 얻은 걸로 보아 가장 가까이 있는 주변에 있는 것을 들여다봤을 때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한국영화 101년

한국영화 101년

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언급한 ‘1인치의 장벽’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그는 “어떻게 보면 이미 장벽들이 부서지고 있는 상태였는데 때늦은 소감이 아니었나 싶다”며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각종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이미 연결돼 있고, 이제는 외국어(영어 아닌) 영화가 이런 상을 받는 것이 사건으로 취급되지도 않을 것 같다. 모든 게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답했다. 송강호는 이날 한국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봉 감독과 영화로 다시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확신을 못 하겠다. 너무 힘들다”며 “다음에는 박사장 역이면 생각해보겠다”고 웃었다.

기생충 올 아카데미 최다 수상

기생충 올 아카데미 최다 수상

‘기생충’은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모두 받은 영화라는 기록도 갖게 됐다. 이런 영화는 1955년 미국 영화 ‘마티’에 이어 지금까지 두 편뿐이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엔 ‘기생충’ 외에도 이승준 감독의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도 한국 영화 최초로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불발됐다.

나원정·민경원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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