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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전기톱으로 트로피 절단, 다섯개로 나누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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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9일(현지시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 등 4개 부문의 상을 받았다. 봉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은 아카데미에서도 빛났다. 9일(현지시간) ‘기생충’으로 4관왕을 차지하면서 그가 쏟아낸 소감은 한 편의 영화처럼 기승전결을 이뤘다. ‘기생충’ 속 명대사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란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봉준호 톡톡 튀는 수상소감 화제 #함께 후보 오른 감독들 치켜세워 #국제영화상에 “오늘 밤 술 마실 것” #감독상 받곤 “내일 아침까지 계속”

가장 먼저 각본상을 받고는 “생큐, 그레이트 오너(감사합니다,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공동집필한 한진원 작가와 함께 무대에 오른 봉 감독은 “국가를 대표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건 아니지만 이건 한국의 첫 오스카상”이라며 “저희 대사를 멋지게 화면에 옮겨준 배우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국제영화상 수상 무대에서는 그가 영어로 덧붙인 “오늘 밤 술 마실 준비가 됐다(I’m ready to drink tonight)”는 그대로 밈(meme)이 되어 온라인상에 퍼져나갔다.

“스코세이지 존경, 쿠엔틴은 형님”

감독상에 호명된 뒤 그는 “어릴 적부터 영화를 공부하며 가슴에 새겼던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인데 그 말을 한 분이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라고 밝혔다. 스코세이지는 ‘아이리시맨’으로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봉 감독의 소감에 스코세이지를 위한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봉 감독은 “마티(애칭) 영화를 보며 공부했는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라고도 했다. 이어 “제 영화가 미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항상 좋아하는 작품 리스트에 뽑아주고 많은 분에게 추천해준 쿠엔틴 형님, 사랑한다”고 말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인 할리우드’로 함께 후보에 오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1917’의 샘 멘데스 감독, ‘조커’의 토드 필립스 감독 등을 치켜세우며 “샘이나 토드 모두 멋진 감독이다.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다섯 개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마치 전편에서 이어지는 후속편처럼, 국제영화상 수상 소감과 연결되는 “감사하다. 나는 내일 아침까지 마실 것(I will drink until the next morning)”이라는 말로 감독상 수상 소감을 마무리하자 객석에서는 폭소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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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및 스태프도 일일이 챙겼다.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으며 오스카의 대미를 장식한 순간에는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와 투자배급사 CJ 이미경 부회장에게 마이크를 양보했다.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도 명언이 쏟아졌다. 4관왕에 오른 비결을 묻자 봉 감독은 “제가 원래 좀 이상한 사람이라 평소 하던 대로 했다. 곽신애 대표나 한진원 작가도 다 평소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놀라운 결과가 있어서 아직 얼떨떨하다”고 답했다. 후보에 올랐을 때 “지금이 ‘인셉션’처럼 느껴진다. 나는 곧 깨어나서 이게 꿈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한 그는 이날은 트로피로 머리를 치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하면 꿈에서 깰 것 같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 봉 감독은 자신에게 영향을 준 감독에 대한 질문에 “김기영 감독을 비롯, 이마무라 쇼헤이, 구로사와 기요시 같은 일본 감독, 대만 뉴웨이브를 이끈 허우샤오셴, 에드워드 양 등 너무도 많다”며 8일 필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페어웰’로 작품상을 받은 중국계 미국인 룰루 왕 감독에게도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 “아시아다, 유럽이다, 미국이다 그런 경계를 우리가 꼭 구획을 나눠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각각의 작품이 가진 매력과 호소력이 있다면 구분조차 의미가 없어진다. 영화의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고 있으니까. 나나 룰루 왕 모두 그저 영화를 만들 뿐”이라고 했다.

“후속작 준비중 … 다 계획이 있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던 소심하고 어수룩한 12살 소년이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만지게 되다니”로 시작한 봉 감독의 어록은 어디까지일까. “한국 영화의 가장 창의적인 기생충이 돼 한국 영화산업에 영원히 기생하는 창작자가 되겠다”(지난해 11월 청룡영화상)고 다짐한 그는 앞으로도 “다 계획이 있다”고 했다. 그는 “상 받기 전 준비하던 작품이 두 편 있다. 하나는 한국어, 하나는 영어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며 “이 상으로 뭔가 바뀌진 않을 것, 20년간 계속 일해온 것처럼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상식 후 한국 기자들과도 따로 만난 봉 감독은 차기작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한국어 영화는 서울 도심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상황에 대한 영화다. 영어 영화는 규모가 크진 않고, ‘기생충’ 정도 규모다. 2016년 런던에서 있었던 실제 사건에 바탕해 준비하고 있다.”

민경원 기자, LA=장연화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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