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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법무장관 임명 안 돼" 여당, 청와대에 공식 전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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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열린우리당 내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초선 의원들이 치고 나왔다. 이들은 28일 5.31 지방선거 참패, 7.26 재.보선 전멸을 계기로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국정쇄신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조기에 정계개편을 하자고 주장한다. 당.청 관계를 놓고도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여기엔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 요구라는 예민한 변수가 잠복해 있다.

이런 움직임의 중심엔 청와대를 향한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에선 "내년 대선의 승리가 절실한 열린우리당이 대통령과의 이별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 당.청 본격 충돌 시작됐나=28일 초선 의원 모임인 '처음처럼' 등 여당 의원 28명은 기자회견을 했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정쇄신에 나서야 한다. 국민의 눈으로, 국민 속에 두 발을 딛고 선 국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지도부에 대해서도 "당은 국정쇄신의 방관자가 아니라 주체라는 입장을 갖고 국정쇄신을 견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처음처럼'은 정동영계, 김근태계, 무계보 의원 등이 모여 만든 탈계파 성격의 초선 의원 모임이다.

하루 전인 27일에는 여러 모임에 속한 초선 의원 39명이 7.26 재.보선 결과와 관련,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의 질책과 요구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 지도부도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김근태 의장은 28일 확대간부회의에서 "흐트러진 당.정.청의 전열을 다시 세우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당.정.청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과 소통하고 있는지 재점검하겠다"며 "오직 국민의 명령을 좇아 비가 새는 곳은 막고 뜯어고칠 것은 뜯어고쳐 당이 앞장서 국정을 눈높이에 맞추겠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김병준 교육부총리 임명 과정에서 당내 반발 여론을 청와대에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 의장의 이날 발언은 선거 참패 이후 고조된 당내 위기감을 감안, 그간 청와대가 가졌던 당.청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이날 이병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성호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과 임내현 법률구조위원장 등 두 사람을 후임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건의했다고 당 핵심인사는 밝혔다. 노 대통령의 '코드 인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전달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참여정부 2인자로 불리는 문재인 전 수석이 장관에 기용되면 또다시 민심을 거스른 '코드 인사'로 간주돼 여당의 '민심 껴안기' 노력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겠지만 인사에 대한 대통령의 고유 권한과 판단도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

◆ "대통령 탈당 요구할 수도"=당.청 간 갈등은 잠복해 있던 대통령 탈당 요구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차기 대선을 위한 정계개편 논의와 맞닿아 있다. 7.26 재.보선 서울 성북을 지역에서 민주당 조순형 전 대표가 당선됨에 따라 당내 수도권과 호남 지역 의원들 사이에선 정계개편의 불가피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이와 관련, 문학진 의원은 "조 전 대표의 당선으로 상당수가 좋든 싫든 다시 판을 짜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정계개편 논의 시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이 변하지 않을 경우 탈당을 요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다른 초선 의원도 "대통령 탈당이 정계개편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겠지만 만약 탈당한다면 그 논의는 훨씬 쉽게 빠르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탈당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은 반응이다.

그러나 정계개편과 그에 따른 대통령 탈당 요구가 공론화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처음처럼' 모임의 성명은 "국정과제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정계개편 논의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했다. 김근태 의장도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정치권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권력게임의 유혹에 빠져 국민이 처한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9월에 시작되는 정기국회 때까지 정계개편과 관련한 모든 논의를 미루자고 했던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가영 기자

◆ '국정쇄신 요구 성명'참가 의원(가나다순)=강성종 김교흥 김동철 김선미 김영주 김재윤 김현미 김형주 민병두 박영선 양승조 양형일 우윤근 우제창 윤호중 이기우 이인영 장향숙 전병헌 정성호 제종길 조정식 주승용 지병문 최재성 한광원 한병도 홍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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