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총재 "투자에 야성적 충동 필요"하다는데…기업 "규제로 다 막아놓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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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규 경제부총리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한목소리로 기업들에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했다.

이 총재는 '야성적 충동'이라는 말까지 쓰면서 기업의 투자를 강조했다. 권 부총리는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경기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에 기업이 적극 나서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냈다.

권 부총리는 노조에도 쓴소리를 했다. "노조가 과도한 힘을 행사하면 1990년대 독일처럼 기업이 그 나라를 떠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정책 담당자들이 그럴듯한 말만 내놓을 게 아니라 경제현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업들이 정말로 원하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도권 규제나 출자총액제한제도 등의 개선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 "야성적 충동이 필요"=이 총재는 28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21세기 경영인클럽 제주포럼'에 참석,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과 기업가 정신을 되살린 적극적인 투자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보수적 투자 성향으로 인해 성장 잠재력이 둔화하고 있다"고도 했다.

'야성적 충동'이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말로 기업가의 직감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이 총재는 기업들이 불확실한 미래에도 위험을 감수하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은 이런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해법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이날 한 참석자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라고 주문만 하지 말고 기업가 정신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에 대한 제도적.법적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 "규제 완화는 말로만 하나"=권 부총리도 이날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CEO포럼 강연에 참석해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9월까지 획기적인 규제 혁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권 부총리는 또 "법인.공장설립, 입지, 환경, 노동 등 기업활동 전반을 포괄한 규제 개선 방안을 만들겠다"며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기업인이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권 부총리는 그러나 출총제와 수도권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출총제는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의 논의 결과를 따라야 하며,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정비법에 이미 계획이 나와 있기 때문에 두 사안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노조에는 "최근에 발생한 불법적인 노조파업 등으로 인해 노조 쪽에서도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등 노사관계가 변화의 실마리를 찾고 있지만 더 노력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반면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개막사에서 "기업들이 유가.원화가치.원자재값 상승 등 신 3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투자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중대표 소송제, 집행임원제도 등의 도입은 신중히 재검토돼야 하며 출총제와 같이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는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표재용 기자, 서귀포=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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