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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CEO ‘중징계=중도퇴진’ 공식, 이번에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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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제재가 금융감독원장의 결재로 최종 확정됐다. 이제 관심은 손 회장과 함 부회장의 거취에 쏠린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중징계 확정…3월 초 통보 예정

3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0일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심의한 파생결합펀드(D LF) 사태 관련 제재안을 원안대로 결재했다. 이에 따라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우리은행장 겸임)과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의 금융회사지배구조법 위반(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에 대한 중징계(문책경고)가 확정됐다.

이후 기관 제재안(6개월 일부 영업정지 등)과 함께 금융위원회를 거친 뒤 3월 초에 각 금융사에 통보하는 절차를 걸치면 효력이 발생한다.

문책경고를 받은 임원은 남은 임기는 채울 수 있지만 이후 3년간 금융회사 임원으로의 취업이 막힌다. 3월 말 주주총회에서 회장직 연임을 앞둔 손 회장과 내년 3월 차기 하나금융 회장에 오를 것이 유력했던 함 부회장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위기다.

장고 들어간 손태승 회장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 [뉴스1]

당초 경징계를 예상하고 플랜B 없이 손 회장 연임을 준비해온 우리금융은 비상이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차기 우리은행장 선임을 위한 그룹 임원후보추천위원회(그룹임추위)를 지난달 31일 열었지만 선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손 회장이 “고민할 시간을 달라”며 앞으로 대응 전략을 고심 중이어서다.

선택지는 두가지다. 하나는 행정소송 등으로 시간을 끌어 3월 말에 손 회장 연임을 밀어붙이는 것. 이는 사실상 금감원에 맞서서 제재를 무력화시키는 조치다. 다른 하나는 연임 포기다.

우리금융 이사회는 7일로 예정된 정기 이사회에서 손 회장의 입장을 확인하고 대응 방향을 정할 예정이다.

우리금융지주는 손태승 회장이 회장과 은행장을 겸임해온 데다, 지주로 출범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따라서 승계를 위한 준비가 그동안 없었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연임을 강행하면 감독당국 리스크가 생기고, 연임을 포기하면 대안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사회가 이런 리스크(중징계 가능성)를 알면서도 연임을 결정했기 때문에, 대응 전략도 이사회가 세울 것”이라고 전했다.

과거 은행권 CEO 중징계 사례는

과거에도 금융당국에서 중징계를 받은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는 적지 않다. 김정태 초대 국민은행장(2004년),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2009년),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2010년), 라응찬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2010년),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2014년),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2014년)이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 또는 직무정지의 중징계를 받았다.

중징계를 받은 CEO들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 징계결정 전후로 중도퇴진했다. 강정원 전 행장은 중징계가 예상되자 제재 결정 전에 사임했고, 이건호 전 행장은 금감원장이 중징계를 확정하자 당일 사퇴했다. 임영록 전 회장은 행정소송을 내며 금융당국 징계에 맞섰지만 이후 이사회가 해임을 결정하자 물러났다.

금융권 관계자는 “인허가권이 있는 금융당국과 맞서면 결과적으로 금융회사 조직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곤 했다”며 “과거 CEO들이 버티지 못했던 이유”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관치 논란 일라” 조심

은성수(왼쪽)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은성수(왼쪽)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뉴스1]

금융당국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자칫 손 회장의 연임을 두고 섣불리 입장을 밝히면 ‘관치 논란’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어서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 관치’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어서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31일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통해 “임원 선임은 주주·이사회가 회사와 주주가치 제고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는 원칙론만 밝힌 것도 이런 분위기를 의식해서다. 다만 금융위가 “최대한 신속히 관련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힘에 따라 금감원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은 확인됐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연임을 강행해도, 포기해도 상당 기간 혼돈은 불가피하다”며 “간단하게 답을 내리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은 “이런 사안(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으로 CEO 중징계는 (과거에) 없었다”며 “징계수준에 대해 논란이 있겠지만, 이번 사태가 은행 CEO가 소비자 보호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심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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