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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명대사] "우린 모두 단역배우. 웬 욕심들인가"라는 박정자

중앙일보

입력

아내는 살인과 죄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맥베스는 소식에 대한 응답처럼 독백을 시작합니다. “언젠가 들을 소식이었지. 내일,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정해진 시간의 마지막 음절까지 기어간다.”
이어서 배우 박정자(78)가 꼽은 인생의 명대사가 시작됩니다. “인생이란 다만 걷고 있는 그림자.”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내뱉고 사라지는 단역배우, 그게 우리들이고 삶이라는 뜻입니다. 맥베스가 이 대사를 하는 동안 그의 성은 점점 포위됩니다. 박정자는 “우리는 누구라도 단역배우, 그것도 초라한 단역배우인데 사는 동안에 웬 욕심이 그렇게 많을까”라며 이 대사를 배우 인생의 한줄로 꼽았습니다.
박정자는 58년 전 작은 배역으로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여왕 역으로 오디션을 봤는데 여왕의 시녀 역을 해야했죠. 그 많은 주연 배우가 무대에서 내려가는 동안 박정자는 20대부터 얼굴에 주름살을, 머리에 새치를 그려가며 계속 무대에 섰습니다. “그때 내가 이 따위 시녀 안한다 했으면 어찌됐을까 아찔하다”는 박정자는 “가끔은 무대 위의 나를 보면서 ‘야, 박정자 너 참 잘한다’ 응원하고 부추기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말과 함께요.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영상=김지선ㆍ정수경, 그래픽=황수빈

‘내 인생의 명대사’

배우들이 직접 꼽은 자신의 명대사입니다. 작품의 울타리를 넘어 배우와 관객에게 울림이 컸던 인생의 명대사를 배우의 목소리로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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