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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시가격도 '표준' 가격 도입해야 신뢰성 높아져"

중앙일보

입력

올해 부동산 시장의 희비를 엇갈리게 할 수 있어 관심을 끄는 영역이 있다. 바로 감정평가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와 올해부터 보상을 시작하는 3기 신도시의 땅값이 감정평가를 통해 산정되기 때문이다.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인터뷰 #“민간택지 상한제, 신도시 보상가 산정에 개발기대감 배제”

정부가 올해 마련한 공시제도 개편 로드맵에도 감정평가가 한 축을 담당한다. 전국 토지 공시지가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감정평가사가 매긴다. 어느 해보다 올해 바쁜 한 해를 보낼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을 만났다. 그는 “일부에서 민간택지 분양가나 보상가가 확 낮아지고 공시가격은 크게 올라 세금이 급등할 것이라는 우려를 한다”며 “시장에 큰 충격이 가지 않도록 평가 시스템을 정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김순구 한국감정평가사협회 회장.

부동산 감정평가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내가 가진 부동산의 경제적 가치를 구체적인 가액으로 정하는 역할이 감정평가사의 역할이다. 1989년 국민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민 권익에 이바지하라고 감정평가를 제도화한 것인데 국민에게 사랑받아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반성한다. 호칭의 아쉬운 점도 있다. 현재 감정평가사의 공식 명칭이 '감정평가업자'다. 공인중개사를 비롯해 모든 자격자 중 유독 감정평가사만 ‘업자’로 호칭한다.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같은 부동산을 여러 명의 감정평가사에게 맡기니 가격이 다르게 나온 사례가 많다. 
“근본 이유가 환경적 제약이다. 국내에서 감정평가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뢰다. 예컨대 내가 특정 감정평가사를 선택해서 내가 가진 부동산을 감정평가하라고 평가비를 준다. 고용인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완벽한 객관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내가 재판을 받을 때 판사를 선택할 수 없지 않나. 감정평가도 이런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감정평가를 받되 누구에게 받을지 선택할 수 없어야 온전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 지역에서 분양할 때 주변 시세를 반영하지 않고 분양가를 책정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나.
“국토부와 새 기준을 만들고 있다. 이전에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평가하면서 주변 아파트 시세를 함께 봤는데 이제는 개발 기대감이 들어있는 시세를 반영하지 못한다. 공시지가와 건축물을 지을 때 드는 원가만 갖고 분양가를 산정해야 한다. 쉽지 않다. 일단 주변 아파트를 지을 때 든 원가가 얼마인지 해당 아파트를 지은 공급자가 제공을 해줘야 하는데 이 자료를 어떻게 구하겠나. 더구나 원가 공개를 하고 있지도 않고….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시세보다 낮은 공시지가가 기준이 되면 분양가가 많이 낮아질 것 같은데.
“현 정부의 정책적 목표다. 분양가 상한제라는 것이 치솟는 아파트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것 아닌가.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가가 너무 높아서 주변의 기존 아파트값까지 오른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일부 사업자가 우려하듯 가격이 확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국토부와 신중하게 논의를 하고 있다.”
올해 3기 신도시 보상도 진행되는데.
“벌써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많이 걱정한다. 보상 가격이 낮을 거라는 우려다. 사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대한 걱정이 있다. 그린벨트를 풀어서 신도시를 개발하지만, 보상은 그린벨트가 풀리기 전에 진행된다. 개발 기대감이 큰 주민 입장에선 감정평가액이 낮다고 느낄 수 있다. 그간 보상지역에서 감정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감정평가액이 주변 땅값보다 낮지 않은 데도 주민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보상지역 감정평가를 할 때 법적으로 개발 이익을 배제해야 한다. 예컨대 정부에서 신도시 지정을 한 후 개발 기대감으로 상승한 가격은 감정평가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발 기대감에 들뜬 주민들은 불만을 갖게 된다. 정부에서도 이 부분을 알고 있어서 양도소득세 등 세금 공제‧감면, 이사비 제공 같은 지원을 하고 있다. 이미 3기 신도시 주민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순조롭게 보상을 진행할 거다.” 
공시가격이 신뢰성을 회복하려면.

“공시가격 구조 자체의 변경이 필요하다. 현재 토지는 개별 가격의 기준이 되는 표준 가격이 있다. 아파트도 표준 부동산이 있어야 한다. 시장 가격에 맞게 감정평가사들이 표준 부동산 가격을 평가하고 개별 부동산 가격을 매길 때 참고하면 된다. 세금도 표준 부동산을 기준으로 비율을 정하면 된다. 국민연금은 60%, 의료보험은 50% 이런 식으로 기준을 정하면 공시가격 인상으로 급등한 세금 부담 때문에 화가 난 국민의 마음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 공시가격의 목적인 거래 질서 확립도 꾀할 수 있다. 지금은 집주인이 주변 거래 시세를 기준으로 내 부동산의 가격을 고민한다. 예컨대 1000가구 단지에서 1가구만 거래됐어도 그게 기준이 되어 버린다. 객관적이지 못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표준 부동산이 있으면 그걸 기준으로 삼게 된다. 사는 사람도 덤터기 없이 원하는 부동산의 적정 가격을 알 수 있다.”

감정평가 외에 추진할 계획은.

“국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감정평가사들이 각 지역을 다니면서 얻은 정보 등을 바탕으로 부동산 관련 지수를 만들려고 한다. 지역별 지가총액이나 임대료 수준, 관리비 수준 같은 것이다. 상가 임차인을 위한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움직임이 심한 상권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될 거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임차인은 상대적으로 정보에서 소외됐다. 정보가 거의 없는 임차인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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