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자제력 잃은 폼페이오, 기자에 "지도서 우크라 찾아보라" 욕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 공영라디오 인터뷰 기자에게 욕설(F-word)과 함께 "세계 지도에서 우크라이나를 찾아보라"며 모욕적 행동을 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인터뷰 도중 지난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수사 요구에 협조하지 않다가 해임된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에게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고 격분해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인 변호사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측근 사업가와 대화 도중 "그녀를 내일 당장 처리하라"고 발언한 녹취록도 공개된 상황에서다.

NPR 기자 "사찰의혹 요바노비치 전 대사에 사과 의향" 묻자 #폼페이오 "미국민이 우크라이나에 관심 있을 것 같냐" 욕설 #국가명 표기 안 된 세계지도 가져와 "찍어보라" 요구하기도 #전말 폭로에 "기자가 거짓말…방글라데시는 우크라 아니다" #헤이든 전 CIA 국장 "켈리, 우크라이나 어딘지 안다고 확신"

미 외교수장이 자제력을 잃은 전말은 이랬다. 24일 라디오 NPR의 간판 프로그램인 '모든 것을 고려할 때(All Things Considered)'의 진행자 메리 루이스 켈리와 인터뷰에서 이란 사태에 대한 질문이 오간 뒤 화제를 바꿔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에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고 직격탄을 던지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아래는 국무부와 NPR 양측이 공개한 인터뷰 녹취록의 마지막 부분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24일 인터뷰 도중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에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충돌한 메리 루이스 켈리 미 공영라디오(NPR) 진행자.[트위터]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24일 인터뷰 도중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대사에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충돌한 메리 루이스 켈리 미 공영라디오(NPR) 진행자.[트위터]

우크라이나와 관련해 당신은 요바노비치 (전) 대사에 사과해야 하지 않나.
"나는 이란에 관해 이야기한다고 해서 당신 쇼에 출연하기로 동의했다. 나는 이 정부 3년의 우크라이나 정책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우리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
어젯밤 당신 직원들과 이란과 우크라이나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나는 오늘 아침 당신과 그것에 대해 더할 이야기가 없을 뿐이다."
나는 당신에게 대답할 기회를 주고 싶다. 국무부 떠난 사람들이 당신이 외교관들을 옹호해야 한다고 얘기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언급하는 익명의 출처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당신의 선임 보좌관인 마이클 매킨리가 의회 탄핵조사에서 그렇게 증언했다.  
"난 매킨리가 말한 것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 나는 국무부 모든 관리를 옹호했다."
당신이 어디서 요바노비치를 옹호했는지 말해달라.
"나는 오늘 할 얘기를 다 했다."

요바노비치 전 대사는 줄리아니 변호사를 포함한 비선 라인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바이든 뒷조사를 압박하는 데 협조하지 않다가 지난해 5월 해임됐다. ABC 방송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축출 1년 전 2018년 4월 말 워싱턴 트럼프 인터내셔널 호텔에서 줄리아니의 사업 파트너인 레브 파르나스가 "요바노비치가 대통령이 탄핵 당할 것이라고 험담을 한다"고 하자 "그녀를 당장 내일이라도 처리하라"며 거듭 쫓아내라고 말하는 녹음 테이프를 공개했다. 또 요바노비치 전 대사가 해임되기 전 수개월 동안 불법 감시와 사찰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황이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하지만 끝까지 답변을 거부한 채 인터뷰를 도중에 중단했지만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NPR과 뉴욕 타임스, NBC 방송 등에 따르면 그는 비스듬히 선 채 켈리를 노려보다가 몇 분 뒤 보좌진을 통해 켈리를 자신의 개인 집무실로 불렀다고 한다. 녹음기는 휴대하지 못하게 했지만 이후 대화 내용에 대해 별도로 비보도(off the record) 요청은 하지 않았다는 게 켈리의 주장이다.

집무실에서 폼페이오는 켈리에게 거의 인터뷰 시간 만큼 욕설과 함께 고함을 쳤다고 한다. 폼페이오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질문을 계속 한 켈리에 불쾌감을 표출하며 'F-Word' 욕설을 포함해 "당신은 미국민이 우크라이나에 관심이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했다.

이어 "당신이 지도에서 우크라이나를 찾을 수 있기나 하느냐"며 보좌진에게 국가명 표기가 없는 세계지도를 가져오도록 했다. 켈리는 BBC·CNN을 거쳐 NPR에서 20년 동안 국가안보 담당 기자로 러시아와 이란·북한·아프가니스탄 등 현장 취재 경험이 많은 기자였다. 켈리가 우크라이나를 정확히 짚자 폼페이오는 "사람들은 이 얘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25일 집무실 대화 내용이 공개되자 직접 본인 명의로 성명을 내고 "켈리가 두 번 거짓말했다"고 반박했다.
"NPR 기자 켈리는 내게 첫 번째는 지난달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다음은 어제 인터뷰 이후 대화 내용은 비보도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다시 거짓말을 했다. 이 기자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품위를 저버린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다. 그러면서 "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부를 헐뜯기 위해 언론이 얼마나 미쳤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라며 "그들이 끊임없이 자신의 의제를 추구하며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미국민이 언론을 불신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성명 말미에 "방글라데시는 우크라이나가 아니다는 점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며 덧붙였다. 마치 켈리 기자의 설명과 달리 우크라이나를 제대로 찾지 못해 방글라데시와 혼동한 것처럼 시사한 셈이다.

이에 낸시 반즈 NPR 수석부사장은 성명을 통해 "켈리는 항상 최대한의 진실성을 갖고 행동해왔고 우리는 이 보도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마이클 헤이든 전 중앙정보국 국장(2006~2009, 공군 대장)은 트위터에 "공식 기록을 위해 말하건대, 내가 정부에 있을 때 켈리를 상당히 많이 상대했고 나는 그녀가 진정한 프로이며 어려운 질문과 대답을 요구하지만, 완전히 정직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며 나는 그녀가 지도에서 우크라이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응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