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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지지도 않는 캔을 이렇게 고이? 여전한 명절 선물 과대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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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3만원대 설 명절 선물 세트. 연어 캔과 햄 캔이 담길 자리 아래쪽에 1cm 남짓의 홈이 파여 있다. ‘과대포장’ 판단에 깊이를 포함한다면, 이 제품의 과대포장 비율은 더 높아진다. 김정연 기자

3만원대 설 명절 선물 세트. 연어 캔과 햄 캔이 담길 자리 아래쪽에 1cm 남짓의 홈이 파여 있다. ‘과대포장’ 판단에 깊이를 포함한다면, 이 제품의 과대포장 비율은 더 높아진다. 김정연 기자

“선물세트 구성품의 위치를 바꾸고 간격을 좁혀, 플라스틱의 무게를 평균 20% 줄였습니다.”

올해 설을 맞아 명절 선물 세트를 판매하는 업체들의 홍보 문구엔 ‘포장을 줄였다’는 표현이 자주 눈에 띈다. 과대포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환경부와 지자체는 오는 24일 ‘과대포장 단속’을 진행하고 있다. 업체마다 ‘바뀐 포장’을 홍보하면서 과대포장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정말 실제로 과대포장이 없어졌을까?

환경부의 '포장 재질 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제품 포장 횟수가 2겹을 넘거나, 전체 포장에서 제품 외의 빈 면적이 25%를 넘는다면 과대포장에 해당한다.

지난 21일 기자가 대형 마트를 찾아 명절 선물 세트를 살펴본 결과, 공간이 넉넉하게 남는 선물세트가 절반 정도를 차지했다.

가격대별로 포장이 커 보이는 상품 하나씩을 선택해, 직접 면적 비율을 계산해봤다. 제품이 담긴 상자의 면적 대비, 제품을 담기 위해 필요한 면적의 합을 계산했다.

4만원 후반대 세트. 제품 면적 63.07%, 빈 면적 36.93%였다.(사진은 조금 기울어져 있지만, 줄자로 수평을 맞춰 측정했다) 김정연 기자

4만원 후반대 세트. 제품 면적 63.07%, 빈 면적 36.93%였다.(사진은 조금 기울어져 있지만, 줄자로 수평을 맞춰 측정했다) 김정연 기자

4만원 후반대의 A 선물 세트는 식용유 2개, 올리고당 1개, 햄 10개, 참치 2개가 들어있었다. A세트를 재어 보니 상자 면적 2081.64㎠, 상자에 담진 제품의 면적 1313.04㎠를 차지했다. 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63.07%, 빈 면적 비율이 36.93%로 과대 포장에 해당했다.

3만원대 세트. 제품 면적은 56.7%, 빈 면적은 43.3%였다. 김정연 기자

3만원대 세트. 제품 면적은 56.7%, 빈 면적은 43.3%였다. 김정연 기자

3만원대의 B 선물 세트에는 식용유 2개, 햄 6개, 연어 2개가 들어있었다. 측정 전 맨눈으로 봐도 빈 곳이 많아 보였다. B 세트는 속 상자 면적은 1495.09㎠, 제품 면적의 합은 847.86㎠였다. 빈 면적이 43.3%로 역시 과대포장이었다.

1만원 이하 선물세트. 언뜻 꽉 차보이지만, 상자 위쪽의 두꺼운 면적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제품 면적은 61.5%, 빈 면적은 38.5% 였다. 김정연 기자

1만원 이하 선물세트. 언뜻 꽉 차보이지만, 상자 위쪽의 두꺼운 면적이 공간을 많이 차지한다. 제품 면적은 61.5%, 빈 면적은 38.5% 였다. 김정연 기자

가격대가 낮은 선물 세트도 과대포장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1만원 미만의 C 선물세트는 식용유 3개를 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엔 공간을 효율적으로 쓴 것처럼 보이나 재보니 속상자 면적 917.93㎠, 제품 면적 564.75㎠로 비율로 따지면 61.5%에 불과했다. 역시 빈 곳이 38.5% 정도 차지했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중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국환경공단 환경포장관리부 관계자가 포장 관련 규격 측정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서울 중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국환경공단 환경포장관리부 관계자가 포장 관련 규격 측정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물세트의 정면 단면뿐만 아니라 깊이까지 따지면 과대포장은 더 심하다. 일부 제품에는 참치캔 등 새거나 깨질 염려가 없는, 완충이 필요 없는 제품을 담는 칸 아래쪽에 약 1㎝ 깊이의 홈이 있었다.

이에 대해 제조사 측은 "상품 배송 과정에서 캔이 파손될 가능성을 방지하면서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해마다 명절이면 반복되는 '과대포장 단속' 안내. [환경부 홈페이지 캡쳐]

해마다 명절이면 반복되는 '과대포장 단속' 안내. [환경부 홈페이지 캡쳐]

환경부 홈페이지에는 2008년부터 ‘명절 과대포장 단속’ 안내 자료가 있다. 10년이 넘게 명절마다 단속하는데도 과대포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추석 기간에도 9447건을 검사해 62건을 적발해 과태료 6490만원을 매겼다. 개별 기업이 내는 과태료는 처음 적발되면 100만원, 2회 땐 200만원, 3회 이상 300만원으로 그리 높은 금액이 아니다.

주로 지자체 공무원들이 점검하러 다니는 데, 상품을 현장에서 직접 뜯어볼 수 없다. 공인 검사기관인 한국환경공단에 검사를 의뢰하면 결과를 받는 데 2주 정도 걸린다고 한다. 단속 업무가 오롯이 지자체 역량, 의지에 달려 지자체 부담도 크고 지역에 따른 편차도 크다.

2020년 설 선물세트에는 과대 포장 없이 빽빽하게 채운 선물세트도 새롭게 눈에 띄었다. 김정연 기자

2020년 설 선물세트에는 과대 포장 없이 빽빽하게 채운 선물세트도 새롭게 눈에 띄었다. 김정연 기자

2020년 설 선물세트에는 빈 곳이 거의 없이 빽빽하게 채운 선물세트도 새롭게 눈에 띄었다. 김정연 기자

2020년 설 선물세트에는 빈 곳이 거의 없이 빽빽하게 채운 선물세트도 새롭게 눈에 띄었다. 김정연 기자

올 설을 앞두고 포장 면적을 줄이고 상품을 많이 담은 ‘밀집 포장'도 눈에 띄었다. 이채은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선물이 커 보여야 있어 보인다는 인식 때문에 과대포장이 사라지지 않다"며 "법적인 기준이 버젓이 있는데 기업들이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국민이 플라스틱, 쓰레기 등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지니까 기업도 올해는 과대포장을 개선한 면이 있다. 소비자가 사지 않으면 기업은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경부는 앞으로도 대국민 홍보 및 기업을 대상으로 법규를 지키도록 유도하고, 단속도 조금 더 실효성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해서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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