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장 뺏기면 문 정부 마비”…민주당도 비례정당론 솔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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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그게 무슨 위성 정당인가. 위장 정당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비례 의석을 확보하기 위한 비례위성정당을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상 ‘비례자유한국당’을 추진하는 자유한국당을 향한 저격이다. 민주당은 줄곧 “비례민주당은 없다”고 한다. 정공법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얘기다.

이해찬 “위장정당” 비판했지만 #한국당 비례정당 맞설 묘안 없어 #총선 뒤 원내 1당 안 될까 우려 #당내선 “사과하고 결국 만들 것”

하지만 최근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비례정당을 창당하지 않을 경우 한국당에 1당을 빼앗길 수 있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면서다. 민주당은 한국당 단독의 비례정당이 현실화하면 전체 47개 비례 의석 중 절반이 한국당 몫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례정당이 없는 민주당의 경우 5~7석(20대 총선 13석)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내부에서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움트고 있다. 현재로선 원칙론을 주장하는 강경파와 현실론의 온건파로 나뉜다.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강경파에 가깝다. 반면 선거 전략을 담당하는 정책실을 중심으로 “최악의 경우 비례민주당도 고려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선거라는 전쟁에선 결국 승리가 정의 아닌가”라며 “명분론에만 치우치다 보면 정작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여소야대(與小野大), 그중에서도 야당이 원내 1당이 되는 국면에 대한 우려가 있다. 국회의장 자리를 내줘야 해서다. 국회의장은 원내 1당에서 맡는 게 국회 관례여서다.

강경파인 이인영 원내대표도 지난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당에서 국회의장이 선출되는 상황은)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국회의장을 민주당이 배출하지 못했다면 오늘의 선거제도 개혁과 검찰제도 개혁의 대역사는 만들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장의 위력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국면 곳곳에서 입증됐다. 지난해 12월 10일 예산안부터 지난 13일까지 35일간 자유한국당 등의 반발 속에서도 강행처리할 수 있었던 건 요소요소에서 문희상 의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상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정신을 무력화했었다.

민주당 관계자는 “총선에서 한국당이 1당이 되면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운영은 그야말로 마비 수준이 되지 않겠나”라며 “국민께 사죄해서라도 비례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줄곧 비례정당의 문제점을 지적해 온 민주당으로선 갑자기 ‘태세 전환’에 나설 명분이 약하다. 정의당과의 관계도 문제다. 이는 총선뿐 아니라 총선 이후 국정운영에서도 도움을 받기 어렵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비례정당을 창당하더라도 선거에 임박해서 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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