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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 양산하는 배달의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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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2팀장

문병주 사회2팀장

사망한 줄 알았다. 집 앞 교차로에 널려진 오토바이 파편과 경찰차 사이렌 소리, 그리고 헬멧이 벗겨진 채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 남성의 모습에 발을 뗄 수 없었다. 이튿날 수소문해보니 다행히 사망사고는 아니었다. 신호가 바뀌었는데도 무리하게 질주하던 배달 오토바이가 승합차에 치인 사고였다.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 건 한두 번이 아니다. 퇴근 시간에 교통신호를 무시하고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를 단 하루도 보지 않은 적이 없다. 아이들이나 고령자가 건너가는 횡단보도도, 보행자 도로도 예외는 아니다. 차 옆은 물론 옷깃까지 스치며 휙휙 지나가는 그야말로 도로 위의 흉기가 돼 가고 있는 모습이다.

수치로도 나타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5년에 23만2000건이던 전체 교통사고는 감소세를 나타내며 2018년 21만7000건이었던 반면 오토바이 사고는 1만2600건에서 계속 증가해 1만5000건이 됐다. 사망 사고 역시 전체적으로 줄었지만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는 예외였다. 지난해(1∼8월) 전체 교통사고는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한 반면 오토바이 사고는 11.9% 늘었다.

늘어나는 이륜차 교통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늘어나는 이륜차 교통사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각 지방경찰청은 오토바이 사고의 증가를 배달음식 시장의 급성장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분석업체에 따르면 배달주문 건수는 2018년 8월 2300만 건에서 지난해 8월 3600만 건으로 56% 증가했다. 배달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으며, 특히 취업난의 청년들이 배달 아르바이트에 뛰어들고 있다. 최근 18~24세 청년층 산재 사고 사망자의 44%가 배달 사고 때문이란 통계도 나왔다.

배달업 종사자들은 늘어나는 사고의 원인을 임금 체계에서 찾는다. 대형 배달앱 업체들을 중심으로 일명 ‘배달 라이더’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배달 시간을 단축하려다 보니 라이더들이 거리의 무법자로 몰리고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단속 한 번 걸리면 하루 벌이가 날아가는 생계형 업종이라는 점이 단속 기관을 주춤거리게 하는 것도 현실이다.

저간의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엄연히 존재하는 도로교통법을 무시하며 자신의 목숨은 물론 타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난폭운전이 용인될 수는 없다. 음주운전 단속이나 스쿨존 단속의 경험에서 이미 강력한 규제의 효과는 확인된다.

교통신호와 법을 준수하는 이들이 ‘죽음의 질주’ 공포를 안고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병주 사회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