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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지킨 라바리니, 한국 여자배구 도쿄올림픽행

중앙일보

입력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이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전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스테파노 라바리니 여자 배구 대표팀 감독이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전에서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두 번 실패하지 않겠다."

지난해 8월 2020 도쿄 올림픽 대륙간예선에서 탈락한 뒤 스테파노 라바리니(41·이탈리아) 감독은 반드시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본선 티켓을 따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켰다.

대한배구협회는 지난해 1월 새 사령탑으로 라바리니 감독을 선임했다. 라바리니는 이탈리아 클럽 팀 및 청소년여자대표팀, 독일여자대표팀 등을 지도했다. 지난해에는 브라질의 미나스 테니스 클럽을 세계클럽선수권 정상에 올려놓았다. 여자 배구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지도자이기도 했다. 비선수 출신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 3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 6개월 동안 네 개의 대회를 치렀다. 발리볼네이션스리그, 올림픽 대륙간 예선, 아시아선수권. 그리고 월드컵까지 무려 36경기를 치렀다. 모든 선수들이 모든 대회를 뛴 건 아니었지만 강행군인 건 확실했다. 강성형 코치도 "정말 힘든 일정이었다. 선수들이 정말 고생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선수들은 조금씩 강해지는 걸 느꼈다. 주장 김연경은 "감독님과 대화를 하면 확실히 우리가 더 좋아지고 있고, 세계적인 배구 흐름을 따라가고 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도 "우리 팀은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운명의 아시아 예선, 상황이 썩 좋진 않았다. 대표팀이 조기 소집됐으나 이탈리아 소속팀까지 겸임하는 라바리니 감독과 다같이 모여 훈련할 시간은 3주 밖에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주포 김연경의 몸 상태가 완벽하지 않았다. 결국 태국에 온 뒤에도 회복되지 않아 준결승까지는 거의 뛰지 못했다. 하지만 40경기를 통해 우리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쌓은 라바리니 감독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여자 배구 대표팀이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전에서 태국을 상대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여자 배구 대표팀이 12일 태국 나콘라차시마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전에서 태국을 상대로 득점을 올린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국제배구연맹]

그리고 12일, 적지 태국에서 한국 여자 배구는 3-0으로 승리했다. 부상을 딛고 출전한 김연경은 양팀 통틀어 최다인 22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신해결사 이재영은 17점으로 뒤를 받쳤다. 부상과 포지션 변경으로 힘들어한 김희진, 중앙에서 무게중심을 잡은 양효진과 김수지도 빛났다. 가장 많은 전술을 수행해야 했던 세터 이다영과 최고참 리베로 김해란도 활약했다. 교체로 투입되도 주전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준 박정아, 한송이, 강소휘, 염혜선, 이주아, 오지영, 표승주도 빛났다. 라바리니 감독은 조별리그 인도네시아전 승리 뒤 "내가 처음에 한국 대표팀에 왔을 때 보니 김연경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더라. 오직 레프트만이 아니라 각자 포지션의 장점을 살리면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내 임무였다"고 했고, 이번 대회에서 그 임무를 수행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니다. 라바리니 감독의 임기는 올림픽 본선이 열리는 8월까지다. 대표팀에겐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동메달 이후 44년 만의 메달 도전이란 과제가 있다. "어릴 때 19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것을 기억한다.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대회"라고 말했던 라바리니 감독이 메달까지 따낸다면, 그는 한국 배구를 빛낸 지도자로 기억될 것이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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