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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 관계개선은 경협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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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바람직한 한소 관계의 설정은 정치관계 수립이 먼저냐, 아니면 경제관계 유지가 먼저냐 하는 「순서」의 문제가 아니라 양자 중 어느 것이 양국 국민에게 상호이익이 되는가를 고려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방한중인 소련학자들이 주장했다.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연구기관으로 1천명의 연구원을 거느린 소련 유수의 싱크탱크인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의 한국문제전문가인 발렌틴 나자레프스키 박사·알렉산드르 코발료프 박사는 대륙연구소(회장 장덕진)·중앙일보·대한상의 공동주관으로 5일 오후 서울대한상의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특별강연회에서 이같이 주장했는데 다음은 이들 학자들의 강연요지. <편집자주>

<코발료프>고르바초프 외교는 경제해결 역점|무엇이 서로 이익되는가 생각해야
소련의 대외정책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 기본사항이 있다. 우선 소련의 외교는 소련의 내부문제인 페레스트로이카에 도움과 활력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 국제문제는 어느 한두 나라의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으며 여러 나라가 상호 협력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국체문제를 나라와 나라사이의 친소관계만을 놓고 따졌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논리가 적용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고르바초프의 신사고 외교다.
소련은 한국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한국문제가 한국국민에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해결되길 바란다.
오늘날 우리는 정치·경제적 이해를 공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남·북한관계에서 소련은 물론 북한과 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력에 있어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앞서있음을 우리는 인정한다.
남이건 북이건 모든 한국인들은 통일을 원한다. 소련은 한국인의 통일의사를 존중하며, 통일이 무력 아닌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되기를 바란다.
통일방안에 있어 소련은 한국이 제안한 6자 회담방식을 반대하지 않는다. 최근 몽고가 자신과 캐나다를 포함한 8자 회담을 제안했는데 흥미 있는 제안이라 생각한다.
한소 관계에 있어 그동안 상당한 관계개선에도 불구하고 근본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그것은 바로 정치가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본인은 경제가 먼저 시작되고 이어서 정치가 따라가는 방식을 좋다고 생각한다. 한국측의 입장은 이와 반대로 먼저 정치관계를 맺고 다음에 경제분야에서 협력하자는 것이다. 한소 관계의 장래는 경제협력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그것은 무엇이 양국에 참다운 이익이 되는 길인가를 찾는 일이다. 문제는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이해부족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소 양국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정치적 관계를 수립하는 일보다 경제·문화·학술교류를 통한양국의 상호이해와 관심의 폭을 넓히는 일이다. 정치가 먼저냐 경제가 먼저냐 하는 문제보다 어느 것이 정말 상호이익이 되는 것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나자레프스키>생필품 절대부족이 개혁조치 가속|한국의 정치문제 집착은 도움 안돼
오늘날 소련경제는 생필품의 절대부족, 성장률의 저조, 가격제도의 개혁 등 해결해야할 많은 문제들을 안고있다.
특히 이 같은 상황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 여름 소련은 역사상처음으로 집단적 파업사태를 경험했다. 고작해야 1백∼2백명이 참가했던 기존의 그것과 비교할 때, 10만명 이상이 참가했던 이 파업사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소련의 한 잡지는 10월호에서 이 파업의 의미를 경제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본인이 보기에 그것은 경제적 요구가 포함된 정치적 파업이었다.
본인이 만났던 한 파업근로자는 『현재의 경제적 상황에서 보다 나은 상품의 요구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임을 잘 알고있다』며 『자신들은 페레스트로이카가 더욱 빨리 진행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재화의 생산에서 판매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정부가 간섭하는 것을 줄이고 자신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경제적 자유를 요구했던 것이다.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가장 큰 현실적 의미는 경제과정에 자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본인은 한국에 와서 한국사람들이 경제교류와 관련, 정치적 관계 수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 집착하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물론 정치관계가 경제관계와 함께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정치관계의 선행을 고집해서는 한국이 얻을 것은 매우 적을 것이다. 경제관계의 진전을 통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며 문화·외교관계의 개선을 고려하자는 것이 소련의 입장이다. 현재 소련은 외교관계가 없는 대만과 활발한 무역거래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지난1917년부터 32년까지 미소간에 국교가 없는 상태였지만 미국은 소련의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었다.
이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정치적 관계의 선행을 고집하는 것은 양국간 경제교류를 확대하는데 있어 올바른 접근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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