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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바람을 부르는 바람개비 47. 의과대학 설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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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제1회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필자.

나는 1970년대부터 우수한 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의 설립을 꿈꿔왔다. 78년 의료법인을 출범시키면서 이런 소망은 더욱 커졌다. 의료기관은 능력 있는 의료인 양성에 책임이 있고, 이에 상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었다. 그러던 차에 94년 심한 경영난에 빠진 경기전문대학과 신명여고를 인수, 빠른 시일 안에 경영정상화를 이뤄냈다.

96년 성장관리 권역 내에 의과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되면서, 학교법인의 성공적인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나의 소망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대학 부지는 먼저 교육부의 의대 설립 기준에 맞아야 하고, 인천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했다. 마침 강화 지역이 성장관리 권역인데다 인천과 인접해 있고, 역사적인 명승지여서 대학 입지로선 최적지라고 생각했다.

전국체전 성화를 점화하는 마니산과 단군 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塹星壇)이 있는 성지다. 그 외에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담은 사적지가 많은 곳이다.

강화에서도 짙푸른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광이 좋은 지역을 찾아 정말 아름다운 캠퍼스를 건설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달여 동안 매일 강화를 돌아다녔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길상면 선두리(船頭里)에서 내 마음에 꼭 드는 부지를 찾아냈다. 해발 336m인 길상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뒤로는 짙푸른 산록이 우거져 있고, 앞에는 출렁이는 서해 바다가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선두리는 한자로 풀이하면 '뱃머리'라는 뜻으로 '세계를 향해 항해한다'는 강화의 기운과 딱 맞아떨어진 곳이다.

국내 유명 설계사무소에 '대학캠퍼스 중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설계해 달라'고 주문했다. 97년 3월 부지를 매입하고, 곧바로 교사 신축공사에 들어갔다. 교육부가 '교사 완공 뒤 대학설립 허가' 방침을 밝히며, 11월에 실사를 나오겠다고 통보해 온 상태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를 벌였다. 의외로 암석이 많아 발파작업이 계속됐고 야간에도 공사장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민원을 설득하면서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런데 그 해 8월 교육부가 당초보다 3개월이나 앞당겨 실사를 나왔다. 공정률이 낮다며 대학설립 허가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육부를 찾아갔다. "내가 책임지고 11월까지 건물을 완공하겠으니, 예정대로 11월에 실사를 다시 한번 나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렇게 해서 97년 12월 27일 우리나라 41번째 의과대학이 설립인가를 받아냈다. '가천의과대학'이 탄생한 것이다.

가천의대와 자매학교인 토마스 제퍼슨의대의 고넬라 학장이 강화캠퍼스를 둘러보곤 "설계한 사람이 프랑스 사람이냐?"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기숙사를 보더니 호텔 수준이라며 감탄했다. 이후에도 강화캠퍼스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본 캠퍼스 중 가장 아름답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고있다.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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