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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 불꺼진 한전|박신옥<경제부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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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의 우선 순위는 그 조직의 본분과 목표에 따라 달리 결정되어야 한다.
국민부담을 전제로 공익사업을 하는 공기업인 경우에는 같은 돈이라도 어디에 먼저 써야할 것인지를 상식 선에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회 동자위 감사에서 한전은 각종 공익·복지관련사업이 지연된 이유에 대해 시종 재원부족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아직 전기가 가설되지 않아 불편을 겪고 있는 도서 벽지, 2천4백8가구에 모두 전기를 공급하려면 6백30억원이 소요되는데 재원이 여의치 않아 못하고 있고 지난 한여름 서울 25만여 가구가 곤욕을 치렀던 월계변전소사고와 같이 대형정전사태의 위험이 있는 여의도 등 15개구간에 복선 공급망(환산망)을 구축하는 사업에도 총1천1백억원의 「막대한」 예산이 소요돼 오는 95년까지 연차적으로 하겠다는 설명이었다.
그런가 하면 전기가설공사 부담금을 못내고 있는 일부 수용가구들의 미상환금(1천37억원)탕감문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재정악화요인」 때문에 고려할 수 없다는 등….
그런데 같은 자리에서 문제된 임직원에 대한 우리 사주구입자금지원 건에 이르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지난 6월 한전주의 국민주2호 공개에 따라 사장과 감사만을 뺀 3만2천1백22명의 임직원들이 1인당 4백96주에서 1천4백61주까지 2천5백55만주를 나눠 갖는 과정에서 자그마치 1천42억원을 연2% 5년 상환조건으로 자체자금을 지원 받은 사실이다.
그것도 당초 구입지원용으로 올 예산에 책정했던 7백16억원에다 청약가격인상에 따른 추가지원 자금으로 송배전 설비예산항목 등에서 3백26억원을 끌어썼다.
이에 대해 한전측은 『대량실권주 발생을 막기 위해 지원이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직원사기진작」도 좋다. 또 한전측 강변대로 무이자로 지원하는 증권회사 등에 비할 때 그것이 결코 특혜가 아니라는 주장도 접어두자.
그러나 정작 돈을 내는 대수용가사업에는 돈을 아끼면서 자사의 복리에는 선뜻 1천여억원을 동원한 처사는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다.
공기업으로써 우선 해야 할 일, 나중에 해야할 일을 가리고 국민들의 이해가 가능한 선에서 임직원들의 「사기진작책」이 추진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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