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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1억7000만원 몰래 빼돌린 해양기술원장, 수금도 못했다

중앙일보

입력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권혁재 기자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권혁재 기자

“국가 재산인 나무 1억 7000만 원 치를 조경업자에 팔면서 계약서 한장 안 썼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해양과학기술원 지난해 6월 나무 2400주 매각 #조경업체와 계약서도 안써…1억7000만원 못 받아 #해수부, 김웅서 원장 해임 요구…경찰 수사 의뢰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있던 나무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실을 뒤늦게 안 해양수산부에서 나온 탄식이다. 해양과학기술원은 옛 본원 부지인 경기도 안산에 있던 나무 2400여 그루를 지난해 6월 조경업자에 팔아넘겼다. 옛 본원 용지는 매각이 진행 중이어서 땅은 물론 건물·수목 등을 맘대로 처분할 수 없다.

심지어 해양과학기술원은 무단 처분한 나뭇값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불법으로 나무를 매각한 탓에 조경업자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고, 이 사실을 안 조경업자는 돈을 주지 않았다.

해수부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3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공공기관이 국유재산을 무단으로 처분하고, 민간업체에 돈을 뜯기는 일은 전무후무할 것”이라며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일을 처리했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주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제주연구소에서 연구원들이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번 비리는 내부 고발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해양과학기술원 익명게시판에 옛 본원에 있던 나무를 매각했고, 매각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해수부는 곧바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 결과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행정부장 A씨는 지난해 3월 옛 본원 부지의 나무를 매각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웅서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은 나무를 멋대로 처분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A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김 원장과 A씨는 지난해 6월 이사회 보고나 의결 등 승인절차 없이 조경업체에 2470주의 나무를 팔아넘겼다. 조달청에 명시된 수목 가격정보로 따지면 1억7000만 원치다.

김 원장과 A씨는 조경업체에 나무를 팔면서 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공공자산을 매각할 때 2000만원 이상은 공개 입찰을 해야 한다. 공개 입찰이 아닌 수의 입찰로 진행한 탓에 계약서를 쓸 수 없었다. 이런 맹점을 안 조경업자는 현재까지 대금을 결제하지 않고 있다.

해수부 감사담당관실은 김 원장은 해임, A씨는 파면, 총무실장은 정직 이상의 중징계 할 것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요구했다. 김 원장 등의 징계 여부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이사회에서 확정하며, 이사회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해수부는 배임·업무 방해 혐의로 김 원장을 조사해 달라며 영도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김 원장이 조경업체와 무슨 부적절한 유착이 있었는지와 빼돌린 나무의 행방 등은 파악하기 어려워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라고 말했다. 영도경찰서는 사건이 접수되면 신속히 수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김 원장은 “나무를 무단 처분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며 “옛 본원의 나무를 처분한 수입으로 부산 영도에 있는 신청사 조경공사를 하려고 했다”라고 해명했다.

해양과학기술원이 2017년 12월 부산 영도구 동삼 혁신지구로 본원을 옮긴 이후 원장이 이런 저런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김 원장 전임자였던 홍기훈 원장도 경영실패로 인한 퇴임 요구로 중도 사퇴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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