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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갤러리, 전시작은 미술관급...이 전시 놓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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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 로슬러, Gladiators from the series: House Beautiful: Bringing the War Home, new series. 2004 Inkjet Print 51 x 61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Nagel Draxler Berlin. [사진 PKM갤러리]

마사 로슬러, Gladiators from the series: House Beautiful: Bringing the War Home, new series. 2004 Inkjet Print 51 x 61 cm Courtesy of the artist, Galerie Nagel Draxler Berlin. [사진 PKM갤러리]

히토 슈타이얼, 프랑코 마추켈리, 프란시스 알리스, 마사 로슬러….
국제 미술계에서 손꼽히는 현대 미술 작가들이다. 이 중에서도 히토 슈타이얼(53)은 현재 세계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꼽힌다. 미술 전문 매체 아트넷뉴스가 최근 꼽은 '지난 1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목록에서도 루이 브루주아와 더불어 맨 앞순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 포스트 모던 조각의 선구자인 마추켈리(80)는 지난해 이탈리아 밀라노 20세기 박물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평생 공공미술 쪽에 주력한 작가이지만, 최근 아트마켓에서 컬렉터들의 관심이 집중된 작가다.

이들을 포함해 다양한 작가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지금 국내에서 열리고 있다. 히토 슈타이얼과 프란시스 알리스 등 현대 주요 작가 6인 그룹전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 마추켈리 개인전은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전시이지만 그 내용은 가히 '미술관 급'이라 할 만하다. 세계 미술의 지형도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6인 작가 그룹전 '영원한 현재(Eternal Now)'

프란시스 알리스, 카데르 아티아, 구정아, 이불, 마사 로슬러, 히토 슈타이얼. PKM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영원한 현재'는 세계적인 비엔날레에서나 한꺼번에 볼 수 있을 법한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았다. '단순히 유명하고 비싼' 작가들이 아니다. 각기 작품을 통해 사회 문제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온 이들은 그 어느 작가들보다도 자신의 예술적 입장을 과감하고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 중에서도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작품의 주인공은 카테르 아티아(49)다. 그는 단정한 전시장 한가운데 고목을 세워놓았다. 그냥 고목이 아니라, 한국의 한옥 철거 현장에서 수집해온 대들보다. 고목의 갈라진 틈에 금속 스테이플러 심을 박고 그는 이를 가리켜  '봉합(repair)'라 부른다. 역사의 상처와 집단 기억, 그리고 치유 등을 화두로 다룬 작품으로, 이 작품은 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바 있다.

카데르 아티아, Eternal Now, 2018(Wooden beams from traditional Korean houses, metal staples, metal plinth.[사진 PKM갤러리]

카데르 아티아, Eternal Now, 2018(Wooden beams from traditional Korean houses, metal staples, metal plinth.[사진 PKM갤러리]

 Francis Alÿs,무제, 2011. [사진 PKM갤러리]

Francis Alÿs,무제, 2011. [사진 PKM갤러리]

히토 슈타이얼, 'Power Plants', 2019 Scaffolding structures, LED panels, multichannel video loop, moving text lines[사진 PKM갤러리]

히토 슈타이얼, 'Power Plants', 2019 Scaffolding structures, LED panels, multichannel video loop, moving text lines[사진 PKM갤러리]

벨기에 태생으로 1986년 멕시코대지진 이후 국제구호활동을 위해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작업하는 프란시스 알리스(60)라는 작가도 이번 기회에 꼭 기억해 둘 만하다. 건축을 전공한 그는 평범한 일상에 주목하면서도 그 일상 안에 공기처럼 존재하는 지정학적 이슈를 시적인 감성으로 풀어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에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연날리는소년을 담은 동영상 작품과 작은 사이즈의 회화 작품을 내놓았다.

마사 로슬러(76)의 작품도 그 강렬한 이미지로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뉴욕에서 나고 자라 그곳에서 작업하는 로슬러는 전쟁 등의 상황을 일상적인 가정생활과 연계해 풀어놓은 포토 몽타주 시리즈로 유명하다. 지구촌 한켠에서 처참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전쟁마저 이미지로 빠르게 소비되는 현실을 그는 사진 콜라주 형식으로 날카롭게 드러낸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히토 슈타이얼은 인터넷 시대 이미지의 유통과 확산에 주목하며 다양한 매체로 작업해온 인물. 디지털 세계, 미술, 인공지능 등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탐구하는 그는 최근 '파워(power)'라는 단어 자체가 지니는 다양한 의미를 살피며 작품으로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작품은 '파워 플랜츠(Power Plants)'로 디지털 시대의 인공지능과 생태계, 인간의 정체성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구정아, 'After CURIOUSSSA',, 2016-2017 Oil painting on canvas after CURIOUSSSA. [사진 PKM갤러리]

구정아, 'After CURIOUSSSA',, 2016-2017 Oil painting on canvas after CURIOUSSSA. [사진 PKM갤러리]

한국 작가로는 이불과 구정아 작가의 작품이 포함됐다. '시적(poetic)인 설치작가'라고 불리는 구 작가는 최근 독일매체 '오오옴(Ooom)'에서 2019년 올해 가장 큰 영감을 준 인물(The most inspiring 100 people) 32위에 올랐다. 회화, 설치, 초각, 음향 작업 등을 아우르며 현실과 비현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탐구하는 그는 이번 전시에 '세븐 스타즈(Seven Stars)' 등을 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박경미 PKM갤러리 대표와 사스키아드락슬러 독일 나겔-드락슬러 갤러리 대표가 공동 기획한 것으로 혼돈의 시대에 지켜야 할 영원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전시는 1월 5일까지.

이탈리아 조각가 프랑코 마추켈리 개인전

이탈리아 조각가 프랑코 마추켈리. 1960년대부터 PVC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왔다.[사진 학고재갤러리]

이탈리아 조각가 프랑코 마추켈리. 1960년대부터 PVC를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왔다.[사진 학고재갤러리]

이것은 한마디로 '배신'이다. 이탈리아 조각가 마추켈리가 아시아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라고 해서 대리석이나 금속 재료의 화려한 작품을 상상했다면 그렇다. 전시장을 아무리 둘러봐도 당신이 기대했을 법한 그런 조각품은 없다. 대신에 전시장에 널린 것은 우리가 흔히 '튜브'라고 부르는 재료, 이른바  공업용 PVC로 만든 놀이 기구 같은 것들, 아주 장난스럽게 튜브를 액자 틀에 끼워 넣은 작품들이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인 1960년대 초 기존 제도와 전시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했던 작가의 고민이 담긴 '발칙한' 작품들이다. 당시 마추켈리가 던진 질문은 이랬다.

"왜 미술작품을 미술관에 가서 봐야 하는 거지?"  

"사람들이 작품을 좀더 편하고 친근하게 만날 수는 없을까?"

마추켈리는 그 답을 PVC에서 찾았다. 1964년도에 PVC로 만든 공기주입식 조각을 처음 선보인 것. 그가 내놓은 작품은 동네 어디에든 내놓을 수 있고 관람객들이 타고 앉아도 되고, 만져도 되는 것들이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던 마추켈리는 "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가 아닌 공공장소에서 보통사람들과 만나는 데 관심이 많았다"면서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오지 않으니 내가 다가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PVC를 소재로 한 그의 작업 공업 재료를 예술에 접목한 획기적인 시도로 주목받았다. 이탈리아 미술평론가인 자클린 체레솔리는마추켈리를 가리켜 "전시 환경에 대한 통념을 전복한 혁신적 작가"라고 평가했다. 1970년대 초부터 그는 유럽 여러 도시의 야외 공간에서 '버리는 예술' 혹은 '유기하는 예술'이라 불리는 'A to A(Art to Abandon)'연작을 다수 선보였다.

프랑코 마추켈리, 비에가 케로라치오네. [사진 학고재갤러리]

프랑코 마추켈리, 비에가 케로라치오네. [사진 학고재갤러리]

프랑코 마추켈리, 비에카 데로라치오네. [사진 학고재갤러리]

프랑코 마추켈리, 비에카 데로라치오네. [사진 학고재갤러리]

많고 많은 재료 중에서 그는 왜 PVC라는 재료를 택했을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는 "플라스틱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작품을 만드는 시도를 해봤다"면서 "저렴하고, 안전하고, 운송하기도 편해 PVC를 택했다"고 답했다.

컬렉터들이 갖고 싶어하는 작품으로  

이런 작품을 만드는 마추켈리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의 작품들은 공공장소에 어울리는 것들이었고, 그는 작품을 팔기보다는 밀라노 브레라 순수미술학교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생활했다. 작품이 영구적이지 않다는 것도 작가에게는 아쉬운 일이 될 수 있는데 그는 "작품이 있는 동안에 사람들과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작품은 사라져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장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컬렉터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상업 작품을 만들지 않던 그가 PVC 작품을 프레임 안에 끼운 '비에카데코라치오네'('하찮은 장식'이라는 뜻)를 선보인 것은 2000년대 이후다. 브레라 미술학교에서 여는 자선경매를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아트바젤 등지에 출품된 작품이 완판을 기록하며 컬렉터들이 갖고 싶어하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마추켈리는 작가 노트에서 "내 작품은 유흥적이며 쉽게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라며  "내가 공업용 자재를 이용한 '즐거운' 실험을 시도한 것은 예술의 소비 원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1월 1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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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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