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가 되면 … " 고이즈미, 후임자로 기정사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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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관방장관의 차기 총리 선출을 기정사실화해 그를 차기 총리로 예우하는 장면이 일본 정계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후임 총리를 뽑는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의원이 출마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아베 장관의 압승이 예상된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24일 국민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행사인 '타운 미팅'에서 옆에 앉은 아베 장관을 바라보며 "총리가 되면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되고 나서 보면, '안 됐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할 때가 반드시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렇더라도 그런 괴로움을 극복해 가는 데 인생의 즐거움과 의미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베 장관이 자신의 후임자가 될 것을 전제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비록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아베 장관을 본인의 개혁 정책을 이끌어갈 후계자로 지목하고 지지한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쳐 왔다.

아베 장관이 소속된 당내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통칭 모리파)의 영수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도 같은 날 NHK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베 장관을 사실상 차기 총리로 전제하며 조언했다.

모리 전 총리는 후쿠다 의원이 출마를 단념한 데 대해 "아베가 아니라 후쿠다가 좋다는 목소리가 경제계와 지방에 있는데 이는 고이즈미 총리의 정책에 대한 반작용"이라면서 "아베는 이를 확실히 알아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반(反)고이즈미.아베 진영은 후쿠다 의원을 대신하는 후보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아베 장관의 지지율을 추격할 만한 인물이 떠오르지 않아 고심 중이라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24일 올해 8월 15일 야스쿠니 참배 신사 가능성을 묻는 질문을 받고 "여론조사의 영향을 받을 일이 아니다"라며 "참배는 개인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총리의 참배 반대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데 개의치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본 국민 사이에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찬반 여론이 팽팽했으나, 지난주 쇼와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이 A급 전범의 합사에 불쾌감을 갖고 참배를 중단했다는 내용의 메모가 공개된 뒤 반대 여론이 우세하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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