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이민자 체류 허가… '후한' 이탈리아 '인색한' 프랑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불법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서유럽 국가들이 최근 잇따라 처방을 내놓고 있다. 오래전에 들어와 자국민이 다 된 사람들에게 늦었지만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단호하게 처리하는 나라도 있다.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이주기구(IMO)가 200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91~2000년 유럽 불법 이민자 수는 해마다 80만 명씩 증가했다.

◆ 관대한 이탈리아=이탈리아는 21일 각료회의를 열어 올해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부여할 불법 외국인 노동자 숫자를 51만7000명으로 확정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이탈리아는 4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우파 정부가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 올해 영주권을 부여할 불법 이민자 숫자를 17만 명으로 제한했으나, 집권에 성공한 로마노 프로디의 좌파 정부가 이 숫자를 크게 늘린 것이다. 파올로 페레로 사회연대장관은 이번 조치에 대해 "공동체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 현실주의자 독일=한때 세계에서 가장 관대한 망명 허용 국가였던 독일은 90년대 초반 망명 신청 건수가 100만 명을 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이 정부 지원에 의존해 국가 부담이 늘어나자 복지혜택을 줄이고 망명 허가 기준을 크게 강화했다. 그 결과 독일에 망명 신청을 하는 건수는 연간 5만 건 이하로 줄었다.

독일 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자국에 살아온 불법 체류자들에게는 합법적 체류 자격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25일 보도했다. 볼프강 쇼이블레 내무장관은 22일 독일 일간 쥐트 도이체 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독일에서 살아온 불법 이민자들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며 "여기서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학위까지 받은 자녀가 있는 가족들을 이제 와서 내쫓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 상당 기간 살고 있는 불법 이민자들은 15만~25만 명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 인색한 프랑스=지난해 연말 무슬림(이슬람교도) 이민 자녀가 중심이 된 소요 사태를 겪은 프랑스는 올 들어 강도 높은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자 유화책의 일환으로 6000여 명에게 체류 허가를 줄 예정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24일 일간 르 피가로와의 회견에서 체류 허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 최고 2만 명 중 6000~7000여 명이 체류 허가를 받고 나머지는 거부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르코지 장관은 지난해 소요 사태 이후 '프랑스에 도움이 되는 이민자 선별 수용'이라는 원칙을 적용해 왔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