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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떼기 국회···문희상은 5번 "내려가요" 한국당은 "아들공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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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부의장 등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잠시 귀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에서 자유한국당 이주영 부의장 등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잠시 귀를 막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과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회기 결정의 건’을 두고 23일 본회의장에서 첨예하게 맞붙었다.

이날 국회는 한국당의 거센 반발 속에 개의돼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 처리에 돌입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 단상으로 달려나와 진행 저지에 나서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오후 7시 57분, 문 의장이 본회장에 도착하자 한국당 이주영 국회부의장, 심재철 원내대표가 기다렸다는 듯 문 의장의 좌우에 섰다. 문 의장은 눈길을 주지 않고 ‘회기 결정의 건’을 상정했고, 주호영 한국당 의원이 반대 토론을 신청해 단상에 올랐다. 주 의원은 “단두대를 만들어서 정적들을 수없이 숙청했던 ‘로베스 피에르’가 자신의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며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신청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주 의원을 중심으로 단상을 반 원형으로 둘러싸고 저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문 의장을 향해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발언을 이어가던 주 의원의 마이크 전원이 약 5분 뒤 꺼지자 문 의장이 나섰다.

문희상 의장(아래 문 의장) “시간이 다 됐어요. (주 의원을 향해)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다음은 윤후덕 (민주당) 의원 나오셔서 토론해주시기 바랍니다.”

한국당 의원들 “불법 의장! 불법 의장!”

이주영 부의장 “주호영 의원! 계속 발언하세요!”

문 의장 “이게 불법이에요. 여러분이 하시는 게 다 불법이에요. 이게 의회입니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를 에워싼 채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 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는 선거법, 공수처법안 및 예산안 부수법안 등이 상정됐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발언대를 에워싼 채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를 요구 하고 있다. 이날 본회의에는 선거법, 공수처법안 및 예산안 부수법안 등이 상정됐다. [뉴스1]

말을 마친 문 의장은 그때까지 자신의 옆에서 서서 한국당 의원들을 독려하던 이주영 부의장을 향해 소리를 치기도 했다.

문 의장 “내려가세요. 부의장님 내려가 주세요. 내려가 주세요. 내려가 주세요. (손으로 단상 아래를 가리키며) 내려가 주세요!”

한국당 의원들은 계속 문 의장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쳤다. 특히 문 의장 아들 석균씨가 문 의장 지역구 상임 부위원장이라는 점을 겨냥해 “아들 공천!”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상황이 지속되자 문 의장은 “토론 종결 요청이 들어왔으므로 토론을 종결하겠다”며 국회 의사봉을 들었다. 문 의장은 곧바로 “국회 임시회 회기 결정안에 대한 수정안에 대해 투표해주길 바란다”고 외쳤고, 표결은 순식간에 종료됐다. 한국당 의원들을 제외한 총 157명의 의원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150명, 반대 4명, 기권 3명이 나왔다. 문 의장이 가결을 선포하자 옆에 있던 이주영 의장이 다시 반발하고 나섰다.

이주영 부의장“에이~ 뭐 하는 거야. 역사에 큰 죄를 지으시고. 불법으로 하지 마세요!”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2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2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뉴스1]

같은 시각, 본회의장 밖에서 홀로 농성을 이어가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황 대표는 문 의장이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해 가결을 선포하자 속이 탄 듯 종이컵에 물을 따라 마셨다.

문 의장과 한국당 의원들 간에 공방의 벌어진 ‘회기 결정의 건’은 이번 본회의의 핵심 논란이었다. 회기 결정의 건은 국회의 회기를 정하는 안건으로,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한국당은 임시국회가 열리면 필리버스터로 최대한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전략을 세웠다. 반면 민주당은 ‘임시국회 쪼개기’로 맞대응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은 해당 임시국회가 끝나면 다음 임시국회에선 바로 표결에 부칠 수 있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이에 한국당은 아예 회기 결정의 건에 대해서도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기로 했다. 2013년 9월 본회의에서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회기 결정의 안건을 토론한 전례를 근거로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기간을 정하지 않고 무제한 토론을 한다는 거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회기 결정의 건이 가결된 이후 한국당의 본격적인 필리버스터가 시작됐다. 논란이 됐던 선거법 개정안이 안건으로 올라오자, 한국당 의원들은 문 의장을 향해 “역사의 죄인이다!” “아들을 국회에 보내려고 의회를 팔아먹는다” “날치기 날강도!”라고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비난 수위가 높아지자 문 의장은 난감한 듯 굳은 표정으로 한국당 의원들을 외면하고, 의사 진행을 이어갔다.

손국희·윤정민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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