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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에너지 ‘10년 계획’에 원전 수출·탈원전 반성은 없었다

중앙일보

입력

정부가 향후 10년간 에너지저장장치(ESS), 태양광, 원자력 등 16대 분야에 에너지 연구개발(R&D) 예산의 90%를 집중 투자한다. 원자력 분야는 해체기술·방사성폐기물 안전관리에 초점을 맞췄다. 원전과 관련 기술을 수출하기 위한 내용은 빠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3일 이런 내용을 담은 2019~2028년 제4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을 발표했다.

태양광 모듈 가격 57% 낮춘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 마나웅 섬에 지은 태양광 발전 시설. [사진 포스코인터내셔널]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미얀마 마나웅 섬에 지은 태양광 발전 시설. [사진 포스코인터내셔널]

이날 4대 전략 중 가장 첫 번째는 ‘에너지 전환을 뒷받침할 R&D 투자 강화’다. 지난 6월 발표된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16개 에너지 중점기술 분야와 분야별 50대 과제를 담았다.

특히 태양광·풍력·수소 등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을 개선하는 방안이 집중적으로 반영됐다. 구체적으로는 태양광 발전에 쓰이는 모듈을 대량 생산해 단가를 57%까지 낮추기로 했다. 태양전지의 효율은 기존 23%에서 2030년 35%까지 끌어 올리고, 이에 앞선 2028년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

풍력단지 운영 비용 역시 생산 전력 1메가와트(MW)당 4000만원에서 2800만원 수준까지 줄이는 내용도 넣었다. 선박형 풍력 발전 등 실증에 성공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빠르게 추격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 2만2869t에 달했던 석탄화력발전소 미세먼지 배출량은 2030년 90% 줄이기로 했다. 현재 한 번 충전으로 가능한 전기차의 최대 운행 거리는 400㎞이지만, 2030년에는 이를 800㎞까지 늘리고 충전시간은 10분 이내로 단축한다.

원자력 기술 육성은 ‘실종’

신고리 3·4호기의 전경.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신고리 3·4호기의 전경. [사진 한국수력원자력]

신·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은 육성하기로 한 데 비해, 원자력 에너지는 원전 해체·안전관리에 초점을 맞추는 양상이다. 산업부가 제시한 50개의 추진과제 중 원자력 관련 과제는 단 4개다. ▶원전해체 기술 글로벌 시장진입 ▶원자력 시설 안전성 강화기술 ▶국민안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 ▶방사선 산업 응용 기술 등이다. 17개 원전 해체 기술을 2021년까지 확보하고, 사용후핵연료관리 표준화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게 골자다. 또 원전 방사능 누출사고 빈도는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다.

문제는 원전 관련 핵심 부품과 기술을 수출하기 위한 육성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 수출 등에 관한 내용은 2017년 12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미래 원자력 기술 발전전략’에 포함된 것”이라며 “2014년 발표한 3차 계획에도 원전 관리·안전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지금과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014년 세워진 제3차 에너지기술개발계획에는 “안전이 최우선인 원전 운영과 함께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점기술을 개발한다”는 내용과 함께 연구용 원자로 요르단 수출 및 상용원전(APR 1400) 수출을 달성 등에 관한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4차 계획에 ‘수출’은 등장하지 않았다.

“원전 건설은 600조 시장, 해체는 20조”

‘현황 및 문제점’ 부분에서는 에너지 전환정책으로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 등 발전 공기업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데 대한 내용이 빠졌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기 전 한전은 5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지만 2017년 6년 만에 208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도 3분기를 제외하고는 매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원자력 계는 반발하고 있다. 장인순 전(前)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풍력과 태양광이 필요하지만, 원전을 대체할 만큼은 되지 못한다”며 “특히 원자력 없이 발전 단가가 3~4배에 이르는 태양광이 의존하게 되면 한국과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는 전기요금 상승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전 원장은 “원전 건설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600조 원대에 이르는 데 반해, 방사성 폐로는 20조도 되지 않아 큰 시장을 버리고 협소한 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라며 “정책 과속으로 원자력 부품·인력이 무너지면 오히려 원자력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세종=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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