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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잡은 그 판결문, 문재인 청와대 한병도·임종석 겨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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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 추천수를 조작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 도지사가 지난 4월 17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모습. 김상선 기자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 추천수를 조작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 김경수 경남 도지사가 지난 4월 17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오고 있는 모습. 김상선 기자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주목하는 판결문이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징역 2년)과 김경수 경남지사(징역 10월·집행유예 2년)의 1심 판결문이다.

김경수·박근혜 처벌한 성창호 판결, 靑에 부메랑 될수도

두 판결문은 모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는 성창호(연수원 25기) 부장판사가 재작년 7월과 올해 1월에 썼다.

왜 박근혜·김경수에 주목하나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던 성창호 전 부장판사의 모습. [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실형을 선고했던 성창호 전 부장판사의 모습. [연합뉴스]

검찰이 두 판결문에 주목하는 건 박 전 대통령과 김 지사에게 적용된 혐의와 법리가 현재 수사 중인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과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친박 후보를 당선시키려 불법 여론조사를 통해 당내 경선에 개입한 혐의로, 김 지사는 드루킹의 최측근에게 댓글조작의 대가로 공직(센다이 총영사)을 제안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공무원 신분인 대통령과 청와대 소속 공무원의 선거 기획 및 개입(제86조)은 물론 선거운동과 불출마 등의 대가로 공직 제공 의사를 밝히는 것(제135조·제 230조)을 엄격히 금지한다.

검찰은 이 판례와 조항 등을 근거로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참모들을 겨냥하고 있다.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017년 12월 올린 술자리 사진. 김경수 경남지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임동호 전 최고위원 모습이 보인다. [사진 임동호 페이스북 캡처]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2017년 12월 올린 술자리 사진. 김경수 경남지사,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임동호 전 최고위원 모습이 보인다. [사진 임동호 페이스북 캡처]

김경수 판결문을 보다 

최근 검찰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임동호 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의 경우 김 지사의 판결문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만큼 사건의 성격이 유사하다.

19일 2차 검찰조사를 받은 임 점 최고위원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현 울산시장의 당내 최대 경쟁자였다.

자유한국당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위첩보를 청와대에 전달했던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 업무수첩에는 "당내 경선시 송철호가 임동호보다 불리하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19일 오후 울산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동호 더불어민주당 전 최고위원이 19일 오후 울산지검에서 조사를 마치고 나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송철호가 임동호보다 불리" 

검찰은 이런 정황 속에서 지난해 초 당시 한병도 정무수석이 임 전 최고위원에게 고베·센다이 총영사와 공공기관 임원 등 공직을 제안한 점과 송 시장이 이후 민주당 울산시장 단독 후보로 출마한 것 사이의 대가성을 의심하고 있다.

임 전 최고위원은 애초 한 전 수석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에게 오사카 총영사를 요구했지만 고베와 센다이 총영사를 역으로 제안받기도 했다.

드루킹과 유사한 임동호 사례  

그 점에선 김 지사에게 자신의 최측근인 도모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앉혀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뒤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받았던 드루킹의 사례와 양태가 거의 똑같다.

임 전 최고위원과 도 변호사는 한 전 수석과 김 지사가 제안한 공직엔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앞서 김 지사에게 실형을 선고하며 "공직 등 이익을 제공할 영향력을 가진 이가 적극적인 제안 의사를 밝힌 것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또 한 전 수석과 같이 김 지사가 센다이 총영사를 역으로 제안한 것을 적극적인 이익 제공 의사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5월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털사이트 네이버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드루킹' 김동원씨가 지난 5월 15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물론 "한 전 정무수석의 공직 제안은 불출마의 대가가 아니었다"는 임 전 최고위원의 공개 반박을 뒤집을 증거와 정황을 확보해야 한다. 드루킹 특검이 "공직 제안의 대가성이 없었다"는 김 지사의 반박을 뒤집었듯이 말이다.

김경수 반박을 뒤집은 특검

김 지사는 1심에서 드루킹에게 센다이 총영사를 제안한 것은 ▶단순 국민 추천에 불과했고(정상적 추천 절차) ▶댓글 조작을 몰랐기에 선거운동의 대가성도 없었으며 ▶자신에겐 총영사 임명 권한도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특검 수사 결과를 토대로 김 지사가 센다이 총영사를 추천한 과정이 ▶일반 총영사 추천 경로와 달랐던 점 ▶김 지사가 김봉준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실 선임행정관을 통해 인사를 직접 챙겼던 점 ▶김 지사가 개인적으로 아무 인연도 없는 드루킹 측근의 인사를 위해 힘을 써준 점 ▶김 지사가 센다이 총영사 임명에 영향을 끼칠 친문 핵심 인사인 점과 댓글조작을 인지한 정황을 근거로 김 지사의 주장을 배척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19일 오전 울산시의회 시민홀에서 열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울산-부산 릴레이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송철호 울산시장이 19일 오전 울산시의회 시민홀에서 열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한 '울산-부산 릴레이 타운홀 미팅'에 참석해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공안 사건을 다뤘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재판부는 드루킹 측근을 전혀 몰랐던 김 지사가 그의 공직을 적극 알아봐 준 것을 댓글조작의 대가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근혜의 판결문을 보다 

검찰은 임 전 최고위원에 대한 공직매수 의혹을 넘어 청와대가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을 위해 선거 전 전방위적 개입과 기획을 한 것으로도 의심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과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새누리당 예비 후보에 대한 다수의 여론조사를 돌리고, 친박 후보 리스트를 만들어 새누리당에 전달했던 점이 "공직선거법상 불법 선거 기획 및 개입 혐의에 해당한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전 대통령 측에서 "선거 당락의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검찰이 개입했다고 주장한 선거 역시 당내 경선에 불과했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공무원의 중립은 헌법적 요청" 

법원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법적 요청 사안"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정치권의 관례처럼 여겨진 청와대의 선거개입 행위가 불법이라 철퇴를 내린 것이다. 해당 판결은 박 전 대통령이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아 지난해 11월 확정됐다.

검찰은 송철호 시장 캠프에서 활동했던 송병기 부시장의 업무수첩에 'BH회의' 등 청와대와 관련한 내용이 다수 적혀있는 점을 근거로 청와대의 불법 선거 개입 가능성을 수사하는 상태다.

2017년 10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를 방문해 당시 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2017년 10월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국보 제285호 반구대암각화를 방문해 당시 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송철호 현 울산시장과 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검찰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 전 시장의 핵심 공약인 산업재해 모(母) 병원(산재모병원)이 기재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탈락한 점, 김은경 당시 환경부장관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울산시를 방문해 송 후보자와 사진을 찍고 물공급 공약 관련 행보를 했던 점, 울산경찰청이 김 전 시장을 겨냥해 무리한 수사를 했던 점 등을 선거개입의 단서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20일 예비타당성 조사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KDI도 압수수색했다.

적폐수사의 부메랑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지난 정부에 적용한 법리와 이를 받아들인 법원의 판결이 현 정부를 겨냥하고 있다"며 "관례로 여겨진 정치행위가 이젠 법적 처벌의 대상이 된 상황"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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