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명복<서울대의대 명예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오래전 서울대병원에 근무하는 친한 교수의 부탁으로 어떤 남자환자(67)에게 왕진을 갔다.
침 1개를 주머니에 넣고 가보니 이 환자는 기동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3년전 소변이 잘 안나와 S대학병원 비뇨기과에서 진찰을 받으니 전립선 비대증이라고 해 수술을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전립선암이라고 하며 대대적인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수술이 잘 돼 6개월 간은 별 이상이 없더니 그 후부터는 아랫배 속(골반속)이 뻐근하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으나 수술이 잘 되었고 아무 이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증세가 점점 심해져 미국에 가서 전문병원의 진찰을 받은 결과 골반강에 고름이 많이 차있고 직장·방광에도 염증이 심해 곧 파열될 상태에 놓여있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과 방광을 잘라내고 왼쪽 배에 인공항문, 오른쪽 배에 인공요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환자는 수술 후 2개월간 골반강의 화농치료를 받았으나 고름이 계속 나와서 하는 수 없이 귀국, Y대학병원에서 2개윌간 입원치료 받은 뒤 퇴원했다.
내가 환자에게 왕진을 갔을 때는 Y대학병원 전문의가 하루걸러 왕진을 와 창구치료를 해주고 있었다.
물론 항생제 주사도 매일 맞았고 최근 들어 전통제도 사용하고 있었으나 2년간 꼼짝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병력을 듣고 증세를 보고 나서 겁이 덜컥 났다. 이 정도로 악화된 병이 간단한 침법으로 치료가 될까 걱정됐다.
그러나 왕진을 간 이상 한번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가족과 환자들에게 딱 10일간만 실험적으로 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치료에 들어갔다.
환자의 체질은 소양인Ⅱ형이었다. 그래서 체질에 맞는 기본방 5회, 살균방 1회로 치료를 해주었는데 3일 후부터 신기하게 고름의 양이 줄어들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0일간 치료 후에는 고름이 거의 나오지 않고 매일 바꿔주는 가제에 쌀이나 녹두크기의 작은 고름자국이 날 정도로 좋아졌다.
그리고 격심하던 요도통증도 시원하게 없어졌다고 한다. 치료를 더 하면 완치되리라 보고 1개월간 계속 치료를 했으나 그 이상은 진전이 없었다.
나는 중지하려고 했는데 환자와 가족들이 치료를 더 해주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1백회까지 치료해주였다.
그러나 환자는 깨끗하게 완치가 안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일상생활이나 화사일 등 상당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본방·살균방의 체질침법과 함께 식이요법 즉 자연식 요법을 철저히 하며 치료했으면 완치되었으리라 본다.
그 당시에는 내가 자연식 요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옴쭉달싹못하던 환자가 사회생활을 할 정도로 좋아졌으니 체질침법의 신묘함이 입증된 셈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