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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첫 국산항모 이름 '산둥함'···취역한 12월17일에 비밀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은 지난 17일 취역한 첫 국산 항공모함 이름을 왜 ‘산둥(山東)함’이라 정했을까. 중국 내 의문이 커지자 중국 해군의 언론 대변인 청더웨이(程德偉)가 그날 바로 답을 했다. ‘해군함정명명(命名)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산둥함이 정식으로 취역한 12월 17일은 #1888년 산둥성 웨이하이 류궁다오에서 #청의 아시아 최강인 북양함대가 출범해 #6년 후 청일전쟁서 일본에 궤멸당하며 #중국의 조선과 아시아 종주권도 막 내려

지난 17일 취역한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산둥함' 이름엔 청일전쟁의 패배 설욕 의지가 담겼다. [중국 바이두 캡처]

지난 17일 취역한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산둥함' 이름엔 청일전쟁의 패배 설욕 의지가 담겼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이 규정에 따르면 순양함 이상의 함정엔 중국의 성(省)이나 직할시 이름을 붙인다. 그 아래 구축함엔 중대 도시의 이름을, 호위함엔 중소 도시, 종합 보급선엔 ‘첸다오후(千島湖)’와 같이 호수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물론 예외는 있다. 중국이 위대한 항해가로 자랑하는 명(明)대 인물 정화(鄭和)의 이름을 딴 ‘정화함’ 등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군함은 ‘떠다니는 국토’와 같다는 인식에 따라 지명을 붙인다.

이런 명명 방식에 따라 중국이 우크라이나에서 건조하던 미완성 항모를 들여와 지난 2012년 정식 배치한 첫 항공모함의 이름 역시 ‘랴오닝(遼寧)함’이 됐다. ‘마오쩌둥(毛澤東)호’로 하자는 여론도 적지 않았으나 ‘지명 우선’ 원칙을 따랐다.중국의 많은 성 중 랴오닝 성이 영예를 안은 건 이 항모 건조가 주로 랴오닝 성에 위치한 다롄(大連)선박중공업그룹에서 이뤄졌고 함재기의 조종사 훈련기지가 랴오닝성 싱청(興城)에 있다는 점 등이 고려됐다.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의 궤멸을 그린 갑오해전은 곧잘 역사의 교훈 주제로 중국 영화에 등장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의 궤멸을 그린 갑오해전은 곧잘 역사의 교훈 주제로 중국 영화에 등장한다. [중국 바이두 캡처]

그렇다면 이번엔 왜 ‘산둥함’일까. 산둥함은 하이난다오(海南)도 싼야(三亞)에 근거지를 두는데 오히려 ‘하이난’으로 명명하는 게 좋지 않았나 하는 반문이 제기된다. 청더웨이 대변인은 “각 성에서 들어온 신청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중국 군사 전문가와 언론 등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중국의 ‘산둥함’ 명명 속내가 드러난다. 바로 19세기 말 청의 아시아 제패 시대를 끝낸 청·일전쟁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중국 군사전문가 리지에(李杰)는 "산둥함이 많고 많은 날 중에 왜 하필이면 12월 17일을 취역하는 날로 잡았는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둥함은 2013년 말 건조에 착수해 2017년 4월 진수했다. 이후 이제까지 아홉 차례나 시험 항해를 했다. 언제든지 취역할 수 있었는데 굳이 12월 17일을 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하이난다오 싼야까지 날아갔다. 리지에는 12월 17일은 중국인이라면 잊기 어려운 날이라고 설명했다.바로 청나라 말기 중국의 첫 근대 해군 함대라고 할 수 있는 북양수사(北洋水師, 북양함대)가 1888년 12월 17일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의 류궁다오(劉公島)에서 정식으로 성립한 날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7일 하이난다오 싼야로 날아가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산둥함의 취역을 축하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7일 하이난다오 싼야로 날아가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산둥함의 취역을 축하했다. [중국 바이두 캡처]

북양함대는 리훙장(李鴻章)의 지휘 아래 영국과 독일 등에서 함정을 사들여 29척의 군함을 보유했으며 ‘아시아 최강’이란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서해 풍도 앞바다를 무대로 청·일 전쟁의 막을 올린 1894년 7월의 ‘풍도 해전’에서 일본에 패하고 말았다.

이어 압록강 하구에서 멀지 않은 서해에서 벌어진 ‘갑오(甲午) 해전’에서 북양함대는 다시 일본에 패했고 웨이하이 류공다오로 도망쳤다가 1895년 2월 이곳까지 쫓아온 일본군에 함대 전체가 궤멸하는 치욕을 당했다.

이로써 청일전쟁도 막을 내렸고 중국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 역시 사라졌다. 아시아 패자로서 중국의 시대가 저문 것이다. 리지에는 북양함대가 성립한 날에 중국의 첫 국산 항모를 취역시킨 건 중국 해군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음을 대내외에 알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초 중국의 첫 국산 항모 작명과 관련해선 ‘산둥함’과 ‘대만함’ 두 이름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다고 한다. ‘대만함’이라 명명할 경우 중국 통일의 의지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결국 ‘산둥함’으로 이름을 지었다.

중국은 첫 국산 항모 산둥함 취역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중국은 첫 국산 항모 산둥함 취역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중국 바이두 캡처]

일각에선 산둥함이 싼야를 근거지로 해 남중국해에서의 제해권 장악을 목표로 한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이와 관련, 중국 인민일보의 소셜미디어 계정인 샤커다오(俠客島)는산둥함과 랴오닝함의 연합 훈련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쪽에 포진한 랴오닝함과 남쪽의 산둥함을 동원해 합동으로 훈련할 최적의 해역으로 대만 동쪽의 태평양을 꼽았다. 직설적으로 말은 안 했지만, 대만 동쪽은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을 빚는 센카쿠(尖閣, 중국명 釣魚島) 열도가 있는 곳이다.

더 멀리는 일본이 자리하고 있다. 샤커다오는 연합 훈련은 ‘1+1=2’가 아니라 ‘1+1> 2’의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131년 전인 1888년 류궁다오에서 근대 해군의 첫발을 내디뎠다면 이젠 중국 해군이 첫 국산 항모 시대의 첫발을 뻗었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아시아의 맹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미국이 아니라 우선 일본부터 넘어야 한다는 속내가 읽힌다. 이를 중국은 그저 131년 전의 오늘을 잊지 말자는 말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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