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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타다, 공유경제의 불편한 이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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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호 35면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3년 전 차를 팔고 ‘노카족’이 됐다. 조만간 ‘공유경제’시대가 될 거라며 말이다. 좀 성급했지만 어쨌든 공유경제시대의 도래를 믿는다. 이 과정에 요즘 ‘타다’를 둘러싼 분란처럼 ‘패러다임 전환기’의 혼란과 갈등도 겪을 것이고, 좀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이런 갈등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공유경제 적은 ‘공유지 비극’처럼 #자기이익만 좇는 사람들의 이기심 #공유경제 시대엔 시민사회가 앞서 #공공선 헌신하는 윤리기준 세워야

‘타다’. 탄생부터 찬반이 팽팽했던 이 서비스는, 최근 갈등양상이 정부·국회·검찰·경제계가 한꺼번에 얽힐 정도로 커졌다. 한편에선 타다 대표의 기소와 타다금지법이 상정되고, 다른 한편에선 혁신기업에 대한 억압이라며 반발한다. 한데 개인적으론 공유경제 대세론을 인정해도 ‘타다’를 이용하진 않는다. 우리 사회의 준비가 너무 안 되어 있어서다.

타다 측은 ‘기사를 포함한 렌터카 대여서비스’로 택시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경제문제는 수사(修辭)가 아닌 시장으로 판단해야 한다. 타다의 시장은 택시 시장과 딱 겹친다. 우리가 혁신기업을 지지하는 이유는 새 기술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일터와 수익원을 창출하고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한데 타다는 새 시장을 개척한 게 아니라 새 기술로 영세한 서민의 생계를 공격하는 형태의 비즈니스 모델이다. 현재 1000여 대는 실험적이라 쳐도, 내년까지 1만 대로 늘린단다. 택시 고사 전략인가. ‘상생’이나 시장 혼란에 따른 사회적 비용 같은 건 괘념치 않는 발상이다.

재계 맏형격인 상공회의소의 박용만 회장은 “미래를 막는 선례”라며 비판했다. 공정하지 않은 말이다. 현재 택시업 종사자들은 모두 그 규제 속에서 룰을 지키며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다. 룰을 지키는 국민의 생업과 생계를 보호하는 건 정부의 일이다. 지금 정부와 검찰의 대응이 잘못이라고 비난할 수 없다.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기존 업종과 겹치는 공유경제 모델로 인해 전 세계 도시들에서도 대립양상이 전개된다. 새 서비스가 기존의 사회안전망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각종 새로운 규제도 나오고 있다. 공유경제를 지지하는 학자들도 “공유경제가 규제의 증가와 다각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예견한다. 규제란 사회적·정책적 목표의 실행수단으로, 시장거래가 때로 비효율적이고 불공평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만 유난을 떠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다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타다를 막는다고 택시 시장의 사양화를 되돌릴 수는 없을 거다. 무인자동차 양산과 공유경제가 활성화되는 시대를 상상해도 답은 자명하다. 승용차가 필요하면 언제든 공유플랫폼을 통해 무인자동차를 부르고, 집 앞으로 찾아오는 자동차를 이용하면 되는 시대는 조만간 올 거다.

선데이 칼럼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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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떻게 그 시대에 ‘연착륙’하는가이다. 연착륙을 위해선 국가도 시민도 준비를 해야 한다. 먼저 국가는 새 경제에 맞는 규제뿐 아니라 일터가 사라질 서민들의 생계 보장, 이들을 보호할 사회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한 재원 확보와 분담 방안 등 준비해야 할 게 산더미다. 여기엔 기계가 인간노동을 대체하는 신 경제시대에 맞는 ‘기본소득제’와 같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준비도 포함돼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경제계·정부가 고민해야 할 건 돌출하는 상황들을 순간순간 막는 ‘두더지잡기’가 아니다.

시민, 시장참여자들의 준비는 어쩌면 더 중요하다. 공유경제를 대중자본주의라고도 한다. 기업이 주된 플레이어였던 시장자본주의를 넘어 시민들이 생산·소비·유통 등 경제전면에 플레이어로 나서는 시대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시대를 이끌어나갈 만한 윤리의식과 철학으로 무장하고 있는가.

‘공유경제’. 소유하지 않아도 서로 빌려주고 함께 쓴다는 의미는 아름답다. 그러나 ‘공유’가 ‘경제’를 만났을 때 일어난 현상들은 아름답지 않았고, 때론 참혹했다. ‘공유지의 비극’, 좀 더 확대해 ‘공산주의’까지 말이다.

주인 없는 공유지에서 각자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된 인간들이 공유지를 황폐하게 만든 사례들, 환경문제를 시장경제에 맡겨놨을 때 일어난 부작용 등. 자기 이익을 향해 무한 질주하는 사람들이 ‘공유’를 ‘고갈과 황폐화’로 끌고 간 전례는 무수히 많다. 여기에 ‘타인의 손해가 나의 이익’이라는 일부의 몰지각한 감정이 공유 물품의 훼손과 남용으로 이어진다.

인간의 본능적 이기심은 선한 공유의 실현을 방해할 수 있다. 공유경제시대, 대중자본주의에 앞서 공공선에 헌신하는 시민성에 대한 학습과 합의가 선행돼야 하는 건 그래서다. 그렇지 않으면 ‘공유지의 비극’과 같은 ‘공유경제의 비극’이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또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대에 이기심의 극대화로 재미를 본 시장자본주의 논리를 ‘성경’처럼 들이대는 우리 경제계의 논리도 이젠 좀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미 10여 년 전 다보스포럼에서는 자유시장경제를 양극화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자본가의 탐욕을 반성했다. 빌 게이츠도 기업이 자선의 의무까지 지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장했고, 서구 기업들은 공공성에 대한 헌신을 기업의 책무로 여기는 ‘기업시민성’을 고심한다. 우리 재계도 이런 세계적 흐름에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 시대가 변하면 생각도 행태도 변해야 한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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