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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만 민족’된 배달의 민족?…배민, 독일계 손잡고 아시아 공략

중앙일보

입력

국내 1위(점유율 55.7%, 지난해 말 기준)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이 13일 세계 1위인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DH)에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에 인수됐다. 양사는 싱가포르에 5:5 합작사(조인트벤처)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하고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선다고 13일 발표했다.

[뉴스분석]

DH는 국내 배달업계 2위(33.5%) 요기요를 설립하고 3위(10.8%) 배달통을 인수한 곳이다. 이로써 국내 ‘배달 트로이카’는 모두 독일계 기업이 소유하게 됐다.

우아한형제들-딜리버리히어로 합작사 설립.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우아한형제들-딜리버리히어로 합작사 설립.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① 배민 기업 가치는 얼마?

DH는 우아한형제들의 기업 가치를 40억 달러로 평가, 국내외 투자자의 지분 87%를 인수할 예정이다. 이 인수액은 국내 인터넷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다.

현재 우아한형제들의 주요 주주는 힐하우스캐피탈·알토스벤처스·골드만삭스·세쿼이아캐피탈차이나 등 외국계 투자사가 약 75%를 차지하고 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장진영 기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장진영 기자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공동창업자 겸 대표는 우아DH아시아의 아시아 총괄(chairman)을 맡는다. 김 대표는 DH 본사에서 최고경영자(CEO)·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글로벌 자문위원회 3인의 한 축이 되는 동시에, 경영진 중 개인 최다 주주가 된다. 주요 경영진이 보유지분 13%를 DH 본사 지분으로 전환하기로 하면서다.

김 대표는 매각 대금 대부분을 DH 주식으로 전환하고 극히 일부만 현금화한다고 밝혔다. 현금화 액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2017년 사회 환원에 100억원을 냈을 정도의 자산가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가 아시아 총괄로 가면서 우아한형제들의 새 대표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엔씨소프트, SK플래닛 등을 거친 김범준 부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낙점됐다. 김 부사장은 주주총회를 거쳐 내년 초 대표에 취임할 예정이다. 배민은 앞으로도 독립적 운영을 계속할 계획이다. ‘배달의민족’ 브랜드도 국내와 해외 시장에서 그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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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딜리버리히어로는 어떤 기업?

DH는 35개국에서 1위, 40개국 이상에서 활약 중인 배달업계 최강자다. 중국을 제외하면 세계 1위다.

2011년 창업 후 매년 인수합병(M&A) 또는 현지 앱 출시를 했을 만큼 빠른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을 장악하기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인수 사례가 독일 리퍼헬트(2012), 북유럽 온라인피자(2012), 터키 예멕세페티(2015), 영국 헝그리하우스(2016) 등이다. 모두 현지에서 1위 내지는 유력 상위업체였던 곳이다. 빠른 확장을 기반으로 DH는 2017년 독일 증시에 상장했다.

니클라스 외스트부르크(Niklas Ostberg) 딜리버리히어로 CEO [사진 딜리버리히어로]

니클라스 외스트부르크(Niklas Ostberg) 딜리버리히어로 CEO [사진 딜리버리히어로]

이런 DH가 배민을 인수한 배경엔 세계 3위 규모 음식배달 시장인 한국에서 1위 서비스를 만들어낸 김봉진 대표를 활용해 아시아로 진출하겠다는 전략과, 국내에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전략이 함께 깔려있다.

DH는 최근 국내 시장 장악을 위해 대량의 요기요·배달통 쿠폰을 뿌리는 강력한 ‘물량 공세’ 행보를 보여왔다. 그래도 시장을 절반 넘게 점유한 배민을 이길 수 없자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③ 김봉진의 승부수

김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쯤 전 사원에게 “아시아로 더 크게 도전한다”는 취지의 사내 메일을 보냈다. 메일에는 “우리 회사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상장사가 된다”, “저는 아시아 총괄이 되고 주요 경영진은 DH의 아시아 지역을 경영한다” 등의 향후 계획이 담겼다. 그는 “국내 1위를 넘어 세계 1위 푸드 딜리버리 서비스의 일원이 된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라고도 썼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13일 오전 11시쯤 전사 직원에게 보낸 사내 메일. [사진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가 13일 오전 11시쯤 전사 직원에게 보낸 사내 메일. [사진 우아한형제들]

김 대표의 메일엔 ‘세계 1위’라는 그의 야심이 담겨있다. 배민이 국내 1위라고는 하나, 배달앱 시장은 쿠팡이츠·네이버·카카오 등 국내외 IT 대기업들이 잇달아 진출하면서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자금력이 부족한 토종 기업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을 법하다. 김 대표는 최근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해외 진출을 모색해왔다. 국내 출혈 경쟁 대신 대규모 자본의 힘을 업고 아시아 시장 공략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④ 아시아 시장 공략

우아DH아시아는 배민이 지난 6월 진출한 베트남을 포함해 DH의 사업 국가인 대만·라오스·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필리핀 등 아시아 11개국에서 배달 사업을 전개한다.

배달의민족 배너. [사진 해당 업체 홈페이지]

배달의민족 배너. [사진 해당 업체 홈페이지]

양사는 이번 합작을 통해 5000만 달러(약 6000억원)의 혁신 기금을 설립하기로 했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시장조사나 현지 컨설팅 등 현지화와 관련한 업무가 최우선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 기금은 한국 푸드테크 벤처기업의 개발 지원비와 라이더 복지 향상 및 안전 교육, 한국 음식점의 해외 진출 등에도 쓰일 예정이다.

⑤ 아시아발 IT 공룡 탄생할까

손정의 소프트뱅크회장(오른쪽)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연합뉴스]

손정의 소프트뱅크회장(오른쪽)과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 [연합뉴스]

우아DH아시아의 탄생은 지난달 18일 일본 인터넷기업 역사상 최대규모 합작인 네이버 자회사 라인(LINE)과 소프트뱅크 손자회사 야후재팬의 경영 통합과 같은 맥락으로 읽을 수 있다. 라인과 야후재팬은 합작을 통해 미국·중국 IT기업에 맞서는 ‘제3극’이 되겠다고 발표했다.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와 BATH(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화웨이)로 대표되는 미·중 IT공룡에 대항하려는 플랫폼 덩치 싸움이 본격화된 것이다.

우아DH아시아 또한 ‘1~2위 기업이 모든 고객과 데이터를 흡수하는 승자 독식의 플랫폼 시장에서 지역 플랫폼만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의 결과다. 우아DH아시아는 향후 아시아 시장에서 그랩·우버이츠·고젝 등 대규모 투자를 받은 현지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게 된다. 동남아에서 배달앱 시장이 초기 단계인 점도 합작의 배경이다.

국내 배달앱 시장을 한 회사가 장악하게 된 데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어떤 판단을 할지가 앞으로의 관심사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과거 G마켓과 옥션이 합병했을 때도 독과점이 될 것이라 비난받았지만, 그 후 10년새 쿠팡·티몬·11번가 등이 우후죽순 진입하면서 시장이 완전히 재편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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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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