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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야당 설득 못시킨 512조 '초슈퍼 예산', 남은 숙제 3가지

중앙일보

입력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대해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대해 반발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정부는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노후 경유차 폐차에 올해 예산 2900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올 4월 환경부 설문 결과 경유차 폐차 보조금을 받은 사람의 60% 이상이 다시 경유차를 구매했다. 저소득층 1인당 연 50매의 마스크를 지원하겠다는 재정 사업 역시 예상과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수요 조사를 제대로 안 해 마스크가 남아돌고 있다"며 대표적인 '재정 누수' 사례로 꼽았다.

[뉴스분석]

올 한해 각종 부작용을 드러낸 재정 사업이 내년에 더욱 규모를 키울 전망이다. 역대 최대 폭(지난해 본예산 대비 9.1%)으로 증가한 내년도 예산안(512조3000억원)이 지난 10일 국회를 통과하면서다. 이번 예산안은 지난 8월 정부 안을 발표할 때도 '재정 중독' 논란이 불거졌다. 예산안 통과가 남긴 숙제 3가지를 들여다봤다.

①성장률·세수 좋아질까

첫 번째 숙제는 경제성장률 회복이다. 정부는 확장재정 편성 이유로 '재정지출 확대→경제성장→세수증대'라는 선순환 논리를 폈다.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직접 "곳간에 작물을 쌓아두면 썩기 마련"이란 '어록'을 남기며 확장재정 논리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확장재정이 곧바로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제에 의문을 제기한다. 제조업 등 주력 산업 침체, 유동자금의 부동산 쏠림 심화 등 지금의 경제 구조에서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는 것은 '고장 난 엔진에 윤활유만 쏟아 버리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예산안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보건·복지·고용(180조5000억원) 분야다. 국민의 윤택한 삶을 위해 '돈을 쓰는' 분야지 민간의 성장을 지원해 '돈을 버는' 영역은 아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정부 재정 지원으로 사회복지·공공행정 등 저수익 분야 일자리가 크게 는 반면 양질의 제조업 일자리는 줄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재정 의존도가 커지면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②미래 세대도 복지 누릴까 

두 번째 숙제는 재정 확대가 미래 세대 부담을 키운다는 점이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경제학자들은 재정을 복지에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복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재정 운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2017년 현재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10.6%로 유럽연합 27개국 평균(25.4%)의 42% 수준이다. 하지만 빠른 고령화 탓에 2060년에는 유럽 평균(27%)의 106%에 달할 전망이다.

정부는 단기 복지 사업이나 효과가 모호한 사업에도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올해 61만개에서 내년 74만개로 늘리겠다는 노인 일자리 사업이 대표적이다. 노인 빈곤 해소가 목적이지만, 이 사업에 참여한 노인 중에는 건물주도 있었다. 상급 병실 이용, 틀니 비용까지 정부가 지급하는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도 내년에만 9조원을 투입한다. 소비자는 물론 소상공인 사용 실적마저 저조한 결제 앱 '제로 페이' 활성화에는 200억 원대 예산을 편성했다. 새로운 지출 항목은 계속 늘지만, 과거 지출 항목에 대한 구조조정은 우선순위가 모호하다.

통계청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문재인 케어, 공무원 17만명 확충 등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 이행에 막대한 재정을 쓰면서 사회 예산이 급증하고 있다"며 "일자리 안정자금(자영업자에 최저임금 인상분을 지원하는 재원) 등 정책 부작용에 따른 응급처방에 나랏돈을 쓰다 보니 재정지출이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③'총선 포퓰리즘' 막아낼까 

세 번째 숙제는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재정준칙' 마련이다. 확장재정 편성은 경기 부진 극복을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에서도 주문하는 정책이다. 그런데도 정부의 확장재정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 것은 나라 곳간이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당장 이번 예산안에도 지역구 도로나 항만 건설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정부 안보다 9000억원 늘었다.

전문가들은 '재정 포퓰리즘'으로 늘어난 재정 적자가 세금 부담으로 돌아올 것을 우려해 민간 투자·소비가 위축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나랏빚(국가채무)이나 재정적자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리지 않겠다는 '재정준칙'을 마련해야 선거용 포퓰리즘에 재정이 동원되는 일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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