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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 폭력으로 이혼"···한·아세안 성명 언급된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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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남편의 결혼이주여성 폭행장면. [뉴스1]

한국인 남편의 결혼이주여성 폭행장면. [뉴스1]

“우리는 결혼 이주민, 다문화 가족 등이 거주 국가에 잘 통합될 수 있도록 대한민국과 아세안이 국내 정책을 공유하고 협력을 촉진하기 위해 긴밀히 협업할 것을 기대한다.”

부산 다문화가족 해체 갈수록 증가 #2000년 118건, 2018년 372건으로 #“남편 음주·폭력 등으로 이혼 결심” #국적취득기준 완화 같은 지원 필요

지난달 25~26일 부산에서 개최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뒤 나온 ‘공동의장 성명’의 일부다. 이 성명에는 한·아세안 국가가 정치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거 외에 사회·문화 분야 협력사항으로 이런 내용을 적시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내용이 성명에 들어갔을까. 전문가들은 국내 다문화가족의 이혼이 늘어나고, 가족 해체 이후에 자녀와 함께 한국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결혼이주여성의 뜻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부산 여성가족개발원은 최근 ‘부산지역 다문화가족 해체 현황과 지원방안’연구보고서를 냈다. 부산에 사는 다문화가족의 해체 현황을 심층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별거와 이혼, 배우자 사망을 경험한 결혼이주여성 18명과 한국인 남편 2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조사를 해서 낸 결과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산지역 다문화가족의 이혼은 2000년 118건으로 전체이혼의 1.2%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혼은 2010년 541건(전체의 7.1%), 2018년 372건(5.6%)으로 각각 늘었다. 다문화가족의 결혼은 2000년 862건(전체의 3.7%), 2010년 1119건(6.0%), 2018년 1117건(7.6%)이었다.

다문화가족 해체현황과 지원방안 연구보고서.

다문화가족 해체현황과 지원방안 연구보고서.

다문화 가족의 이혼 중 아내의 국적은 한·아세안 정상회의 참가국인 필리핀·베트남·캄보디아·태국이 43.3%로 많이 차지했다. 다문화 가족의 이혼, 많은 나이 차이로 인한 배우자 사망 등으로 다문화가족의 해체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게 연구원 분석이다.

조사결과 결혼이주여성은 의사소통의 문제, 문화적 차이, 성격 차이로 인한 부부갈등, 시댁 식구들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 남편의 음주·외도와 상습적인 폭력,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혼이나 별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혼 과정에서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결혼이주여성들은 자녀를 양육하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자녀 양육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가족 해체 이후에는 자녀 양육의 어려움,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야 하는 부담감, 이로 인한 경제적·정서적 문제 등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심층 면접 조사에서 한 결혼이주여성은 “결혼하고 6개월이 지나도록 남편이 장애인인 걸 몰랐다. 집안에 싸움이 나도 남편이 가만히 있길래 이상하다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결혼 이주여성은 “교통사고로 갑자기 남편이 사망하고 난 뒤 ‘너 때문에 내 아들이 죽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었고 우울해졌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국회 여성가족위원회)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다문화가정 가정폭력 검거 현황’에 따르면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지난 6년간 4515건으로 나타났다.

김혜정 여성가족개발원 책임연구위원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를 개최한 부산에서 선도적으로 다문화 가족의 해체에 대응하는 지원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관리와 제도적 규제 필요, 국적 취득기준 완화, 이주여성을 위한 직업훈련 확대와 일자리 지원, 아이 돌봄 서비스 지원 등을 제시했다.

부산=황선윤 기자 suyo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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